해 질 녘 서울 청계천 모전교, 광통교 사이엔 천변을 따라 놓인 빨간 의자에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다. 손에 책을 든 이들은 서울야외도서관 ‘책읽는 맑은냇가’를 체험하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온이 25도까지 내려간 지난 6일 늦은 오후, 같은 곳에서 본 이들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파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헤드폰이 모두의 머리에 걸려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독서하는 ‘사일런트 야(夜)한 책멍’ 행사가 열린 것이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에 의자와 책꽂이를 놓고 시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한 ‘서울야외도서관’을 운영해왔다. 지난해에는 170만명이 이용하며 시민이 뽑은 ‘서울시 10대 뉴스’ 1위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청계천에서 야외도서관을 시범 운영한 뒤 올해부터는 청계천에도 ‘책 읽는 맑은 냇가’라는 이름을 붙여 지난 4월부터 공식개장했다.
‘야한 책멍’ 행사는 더위가 꺾일 무렵 성인들에게 청계천에서 더 몰입도 높게 책 읽는 경험을 시켜 독서 문화를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2015년 9.8권에서 지난해 3.6권으로 줄었다. 서울시는 “Z세대를 중심으로 독서와 기록 활동을 멋지다고 여기는 개념인 ‘텍스트힙’이 등장했다”며 “20~30대에게 오롯이 독서에 몰입하는 경험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야한 책멍은 지난달 24일부터 사전 신청자 150명을 선착순으로 받았는데, 당일에 신청자가 마감됐다고 한다. 당일 신청자 50명을 받는 줄에는 신청 절차가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2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중랑구에서 함께 온 최상미씨(63)와 성은숙씨(58)는 “(‘야한 책멍’도) 사전 신청하려 했지만 일찍 마감돼서 줄을 섰다”며 “조명 켜진 청계천처럼 외국 분위기 부럽지 않은 곳에서 책을 읽다보니 기분도 함께 좋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에서 연인과 함께 청계천을 찾은 김창현씨(33)는 “서울에 일이 있던 차에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보고 사전 신청을 했다”며 “밖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경험이 새롭다”고 말했다.
신청자들에게는 헤드폰과 함께 몰입상자와 작은 수건, 책에 걸 수 있는 독서등이 주어졌다. 몰입상자는 책을 읽는 동안 휴대전화를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상자로, 상자와 같이 딸려 온 자물쇠를 잠그면 주최 측에서는 현장을 떠나며 몰입상자를 반납할 때까지 열쇠를 보관했다. 책과 음악에만 집중하고자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몰입상자를 받아갔다고 한다. 작은 수건은 청계천에 발을 담그며 책을 읽은 뒤 닦을 수 있도록 마련됐다. 신청자는 각자 자리를 찾아가 옆에 놓인 책바구니에서 원하는 책을 꺼내들었다. 각자 가져온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행사 신청자들이 청계천변에 마련된 빨간 의자에 앉자 유튜버 DJ MAV가 선곡하는 음악이 헤드폰으로 흘러나왔다. DJ의 선곡 전에는 잘 알려진 팝송이 흘러나오다가, 행사가 시작되니 바람·물 등 자연의 소리가 섞인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며 책을 읽거나,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려 곳곳에 놓인 책바구니와 동물 모양 책꽂이를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책멍에 심취해 있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책 내용보다도 음악을 들으며 책 읽는 행위에 한껏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야한 책멍’을 오는 22일 광화문광장에서 진행 중인 야외도서관인 ‘광화문 책마당’에서도 개최하기로 했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10일 “서울야외도서관의 다양한 시도가 2030 MZ세대에게 독서를 ‘힙한’ 활동으로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앞으로도 일상에서 독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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