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시티 카누·조정경기장에서 열린 카누 용선 여자 500m 에서 금메달을 딴 단일팀이 한반도 깃발이 게양되자 아리랑을 다같이 부르고 있다.  팔렘방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시티 카누·조정경기장에서 열린 카누 용선 여자 500m 에서 금메달을 딴 단일팀이 한반도 깃발이 게양되자 아리랑을 다같이 부르고 있다. 팔렘방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호흡을 맞출 시간은 20일 남짓. 전문 선수가 없었기에 노 젓는 법부터 익혀야했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오락가락한 경기 일정에 마음을 졸였다. 여자 500m 경기를 앞두고는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역사는 그 모든 악재 속에서도 쓰여졌다. 카누 드래곤보트(용선) 여자 남북 단일팀이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 종합 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코리아’에 금메달을 안겼다.

단일팀은 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시티 카누·조정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카누 드래곤보트 여자 500m 결승에서 2분24초788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200m 결승에서 단일팀의 국제 종합대회 첫 메달을 안긴 데 이어 이틀 연속 쾌거를 이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이번 대회 함께 참가한 조정·여자농구 단일팀도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을 드래곤보트 단일팀이 가장 먼저 해냈다.

드래곤보트 선수단은 단일팀 사상 첫 메달을 자신했지만, 그것이 금메달이 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했다. 10명의 패들러가 드러머의 박자에 맞춰 함께 노를 저어야 하는 드래곤보트는 카누 종목 중 가장 많은 인원이 탑승한다. 그만큼 선수들의 호흡이 중요하지만 남북 선수들이 호흡을 맞춘 시간은 20일 정도에 불과했다. 북측 선수들의 합류가 늦어져 지난달 초 계획했던 합동훈련이 지난달 말에야 겨우 시작됐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한국 대표팀이 한 달 만에 호흡을 맞춰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딴 경험이 있었지만, 시간은 그 때보다 짧았고 단일팀이 넘어야 할 마음의 벽 또한 높아 보였다.

훈련 환경도 녹록치 않았다. 40도에 육박한 최고 기온 탓에, 하루에 훈련을 세 차례로 나눠 진행했다. 북측 선수들 중 드래곤보트가 주종목인 선수가 없어, 노 젓는 법부터 새로 연습해야 했다. 숙식을 함께 하며 호흡을 맞추려던 계획도 성사되지 못했다. 보안 등 문제로 남북 선수들은 서로 다른 숙소에서 생활했다. 공개 훈련 행사 중 “치킨을 먹으며 친해지겠다”고 한 남측 선수의 말에 단일팀은 선수단이 함께 먹을 치킨을 협찬받았지만, 합동 훈련 때 남북이 각자 나눠가져 숙소에서 따로 먹어야 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뒤에는 아시안게임 조직위의 오락가락 행정에 곤혹을 치렀다. 당초 25일 남녀 200m, 26일 남녀 500m, 27일 남자 1000m 경기가 예정돼 있었지만, 단일팀은 현지에서 27일과 25일 경기 일정을 서로 바꾼다는 통보를 전해들었다. 그러나 경기 전날인 24일 저녁에야 경기 일정이 다시 원상복귀됐다. 장거리 경기를 준비하던 단일팀은 해가 질 무렵 부랴부랴 단거리인 200m에 필요한 스타트 훈련을 짧은 시간 동안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단일팀은 보란 듯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m에서 예상 밖의 첫 메달이 나왔다. 단일팀은 중화권·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스퍼트가 강하다는 점을 바탕으로 장거리 종목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만큼 단거리 훈련 시간은 적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첫 메달을 장거리에서 기대했다. 하지만 200m에서 2위 인도네시아와의 0.034초에 불과한 차이로 동메달을 땄다. 단거리에서 예상치 못한 메달에 자신감을 얻은 선수단은 주종목인 500m에서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남북 측 각각 8명씩으로 꾸려진 16명의 선수들은 짧은 기간에도 힘들게 훈련했기에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했다.

장현정(20·한국체대)은 “하루에 10시간씩 2주 넘게, 최선을 다해 훈련했다”며 “짧은 시간 고되게 훈련했다”고 말했다. 혹독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같은 팀이라는 유대감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열정이었다. 여자팀에 배속된 남자 스틸러 현재찬(34·울산시청)이 플레잉코치처럼 북측 선수들에게 드래곤보트를 가르쳤다. 주장을 맡은 김현희(26·부여군청)는 북측의 어린 선수들의 언니를 자청했다.

김현희는 “선수들이 어리다보니 처음에는 집중이 안될 때도 있었다”며 “언니들 믿고 훈련을 피땀 흘려 열심히 하면서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북측 선수 도명숙(24)은 “서로가 다 리해(이해)해주고 마음을 합쳐서 나온 결과”라며 “남들은 1년 동안 준비할 동안 우리는 20여일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서로 마음과 뜻을 합쳐 민족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떨쳤다”고 감격을 전했다.

전날 동메달의 아쉬움을 미처 지워내지 못했던 단일팀은 26일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올라 환하게 웃었다. 시상식장 가장 높은 곳에 한반도기가 오르고 아리랑이 울려퍼지자 조금씩 눈물이 터져나왔다. 변은정(20·구리시청)은 “반주를 들을 때는 몰랐는데 노랫말을 부르기 시작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여자팀의 김광철 북측 공동 감독은 “북과 남 선수들이 한 배에 올라 뜻과 맘을 합쳐 노를 저어갈 때 ‘민족의 단합된 힘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감동의 드라마를 이뤄낸 선수들의 표정은 팔렘방의 궂은 하늘 아래서도 눈부시게 빛났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