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살충제 검출 계란’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발표한 ‘식용란선별포장업을 통한 계란 유통 의무화’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초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지난 1월 농식품부에 계란유통센터(GP센터) 설립 추진 상황에 대해 질의해 받은 답변서를 보면, 농식품부는 계란유통센터 설립의 필요성으로 ‘공정한 계란 가격 결정 시스템 구축으로 농가 소득안정 유도’ ‘계란 품질 및 위생수준 향상을 통한 소비자 신뢰 확보’ ‘식용란 수집 판매업자와 농가의 접촉차단으로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확산 차단’을 들었다.
계란유통센터는 ‘GP(Grading & Packing)센터’로도 통용되며 농가로부터 받은 식용 계란의 품질별로 나누고 포장해 유통업체로 넘기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도 이미 GP센터가 존재했으나 식용 계란은 GP센터를 거쳐 유통할 의무가 없어 시중 유통 계란의 3분의 1만이 GP센터를 거쳐 유통됐다. 이 때문에 ‘식용란선별포장업’이라는 별도의 업역을 만든 뒤 GP센터를 육성하고, 식용 계란을 시중에 유통하기 전 GP센터를 거쳐 품질을 관리하는 대책이 논의됐다.
당시 농식품부는 GP센터 유통 의무화가 필요한 이유를 현 계란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우선 계란농가가 유통업자들이 불러주는대로 계란 대금을 받을 정도로 가격결정체계가 주먹구구식이었다. 유통업자들은 계란을 농장으로부터 1달 단위로 공급받는 반면 유통업자들은 물류비, 품질저하 등의 이유를 들어 계약된 금액보다 1~5% 정도 낮은 금액을 농가에게 지급했다고 농식품부는 파악했다. 또 계란 생산농가는 1061곳(지난해 6월 기준)인 반면, 유통업체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2414개에 달할 정도로 영세 유통업자가 난립하는 반면 소규모 농가들도 계란 산란일 등 정확한 정보를 유통업자에게 알리지 않는 등 유통구조가 낙후된 점도 GP센터 유통 의무화의 필요성으로 제기됐다.
농식품부는 계란 생산량에 대한 통계가 거의 없어 수급조절이 어렵다고도 적었다. 개별 농장이나 유통업자들이 계란 생산 및 판매량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고, 별도로 집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축동향 통계는 3000마리 이상의 닭을 키우는 대규모 농장의 수치를 바탕으로 추산한 수치였다. 반면 모든 계란이 GP센터를 거쳐 유통되면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의 숫자 및 등급 통계도 파악이 가능하다. 또 유통업자가 각 계란 농장을 일일이 다니며 계란을 사들이는 현재 유통 구조가 AI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반면 GP센터의 차량만 방제하면 AI 확산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농식품부 측 논리다.
반면 식약처는 GP센터를 통한 계란 유통 의무화에 대해 “규제로 작동할 우려가 있어 식용란수집판매업(기존 유통업자)의 기능을 보완하는 등 별도 (법) 개정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식약처는 또 “(GP센터 유통) 의무화에 대한 공론화를 최소화 하자”고도 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지난해 10월 식약처와의 협의 때 “계란의 가격 안정 및 수급조절을 위해 식용란선별포장업(GP센터) 유통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GP센터 의무화를 위해서는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 법은 박근혜 정부 출범 때까지 농림수산식품부(현재 농식품부 전신) 소관이다가 2013년 식약처 소관으로 넘어가 식약처와의 협의가 필요했다.
식약처가 살충제 계란 유통을 막을 수 있던 대책을 내놓고도 사전에 시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식약처 관계자들은 지난 21일 언론 브리핑에서 “당시에는 살충제 문제가 아니라 깨진 계란 등 불량 계란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GP센터 의무화가 논의 된 것”이라며 “계란농가나 협회 의견 수렴하고 재외국 사례도 조사해야 했다”고 해명했다. 농식품부도 계란에 함유된 살충제를 GP센터 유통 의무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계란 유통의 난맥상이 최근 두드러진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던 점, 살충제 계란 문제의 기저에는 낙후된 계란 유통 구조가 있었음에 비춰보면 식약처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권 의원은 “식약처가 유통업계의 의견과 입장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도외시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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