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인근 풍경. 오동욱 기자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하는 역명병기 사업이 공공성을 해치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국가철도공단이 병기역명을 정할 때 공공성과 주민 참여 부분 배점을 명확히 한 것과 달리, 교통공사는 사업자의 입찰액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공사는 연 5000억원 이상 발생하는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성을 우선 고려했다면서도 공공성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22일 교통공사에 따르면 교통공사는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지하철역 10곳에 역명을 병기할 사업자를 모집해 지난 9일 3곳의 사업자를 선정했다. 2호선 강남역에 11억1100만원을 써낸 하루플랜트치과가, 2호선 성수역에 10억원을 써낸 CJ올리브영이, 5호선 여의나루역에는 2억2000만원을 써낸 유진투자증권이 각각 선정됐다. 입찰가를 써낸 사업자들이 원하는 명칭은 계약 체결 후 3년간 역명 표지판에 함께 쓰이고 안내방송 때 함께 불린다.

서울지하철 역명과 함께 기업 명칭이 불리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뒷말도 나오고 있다. 올리브영은 성수역 인근 대형빌딩 1~5층에 입점할 예정이다. 다만 2호선 을지로입구(하나은행), 을지로4가(BC카드), 3호선 안국(현대건설), 4호선 신용산(아모레퍼시픽) 등 역명을 병기한 기업들은 해당 역 근처에 본사를 두고 있다. 올리브영의 본사는 용산구 동자동으로, 4호선 서울역과 가깝다. 다만 올리브 영은 성수역 인근에 플래그십 스토어 이상의 초대형 매장을 낼 계획을 앞두고 입찰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성수역 근처에 매장을 짓지도 않은 기업이 해당 지역을 상징할만한 병기역명에 쓰이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된 원인은 교통공사의 병기역명 사업자 선정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데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운영 구간 역을 관리하는 국가철도공단은 ‘광역전철노선 역명부기 세부운영지침’에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들고 있다. 100점 만점에 공공성 30점, 선호도 30점, 접근성 20점, 가격 20점을 각각 배점했다. 특히 공공성 항목에는 관공서, 공공시설 등 공익기관일 경우 30점, 교육기관은 25점, 의료기관은 20점을 받게 되며 다중이용시설은 15점, ‘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은 10점을 받는다.

반면 교통공사는 ‘역명병기 대상기관 선정기준’에 역명병기가 가능한 기관의 요건을 명시했지만 구체적인 평가 기준까지 공개하지는 않았다. ‘응찰금액이 동일할 경우 공공성 및 편의성이 높은 기관으로 선정한다’는 문구 정도가 적혔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경제성을 우선 고려해서 낙찰가를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통공사는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려면 경제성을 우선 고려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펴 왔다. 코레일은 KTX 등 고속열차로 벌어들인 수익과 공익서비스 손실보전(PSO) 명목으로 받는 정부 지원금 연 3800억원으로 지방 노선 운용 및 노약자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를 메운다. 반면 교통공사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병기역명을 판매해 최대한 많은 수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

다만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기관이 공공성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지역 대표성과 공공성을 지금보다 더 반영할 수 있도록 역명병기 기준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