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배모씨(37)는 지난 15일 휴일을 맞아 열살 난 아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돈가스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배씨는 돈가스가 계란에 말린 모습을 보는 순간 속으로 아차 싶었다. 배씨는 계란을 걷어내고 아들과 돈가스만 먹었다. 집에 돌아간 뒤에는 집에 남아 있던 계란 5개도 버렸다. 아들에게 평소 간식으로 삶은 계란을 줬지만 시리얼로 대체했다. 배씨는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김밥 등 계란이 들어간 음식은 물론 빵도 먹지 않을 것”이라며 “혹시 몰라 치킨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살충제 계란’ 파문이 시민들의 식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집에 남은 계란을 버리거나, 추이를 지켜보며 계란을 먹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아이를 둔 가정에서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식당들은 계란을 주 재료로 하는 음식을 팔지 않거나 계란을 뺀 채 음식을 내놓는다.

■ “계란 이유식에 중단” 

이모씨(33)는 집에 남은 14개 계란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다. 문제가 되는 ‘08’번이 찍힌 계란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14개월 된 아이에게는 계란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씨는 “6개월 때부터 삶은 계란 노른자를 먹이다가 돌이 지나서부터 계란 흰자까지 섞어 이유식을 만들었다”며 “살충제 파문 때문에 계란 이유식을 중단하고 다른 걸로 대체하려 한다”고 했다.

대형마트에서 기존에 구매한 계란을 환불해준다는 소식이 들리자 부랴부랴 영수증을 찾는 이들도 있다. 엄모씨(37)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2명이 계란을 달고 살지만 일단 냉장고에 남은 계란은 먹지 않기로 했다”면서 “마트에서 영수증을 가져오면 환불해 준다기에 영수증을 찾고 있다”고 했다. 

예견된 사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중 계란보다 2배가량 비싼 평소 유기농 계란을 먹어온 신모씨(45)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도 해외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증거들이 많았는데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기다 사태가 커진 커졌다”라며 “살충제 계란 사태도 기존 약품처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음에도 계속되다가 이번에 자세히 알려져 파문을 낳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는 유기농 계란을 먹지만 밖에서 먹을 때가 문제”라며 “계란을 달고 사는 아이가 걱정”이라고 했다.

■ 계란 뺀 음식 내놓은 식당 속출…“계란 들어간 메뉴 할인” 음식점도

‘살충제 계란’ 파문은 식당에도 영향을 끼쳤다.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마트의 분식 매장은 김밥에 들어가던 계란을 전부 뺐고 라볶이(라면+떡볶이) 위에 토핑으로 올리던 계란을 튀김으로 대체했다. 함박스테이크 위에 반숙 계란을 올려주던 양식 매장 역시 계란을 뺀 채 음식을 판매 중이다. 또 샐러드를 판매하는 매장에서는 계란 토핑을 다른 토핑으로 대체한다는 안내를 하고 있다.

푸드코트에서 김밥과 라볶이를 주문한 양은정씨(35)는 “떡볶이가 맵기 때문에 7살 딸 아이에게 계란을 으깨서 주는데 오늘은 계란이 없으니 좀 허전하다”면서 “그래도 살충제 계란을 먹는 것보단 나으니까 아쉬운 대로 먹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 양평점 내 샐러드 판매 매장 메뉴판에 계란이 들어가는 샐러드에서 계란을 다른 토핑으로 대체한다는 안내가 쓰여져 있다. 이유진 기자

16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 양평점 내 샐러드 판매 매장 메뉴판에 계란이 들어가는 샐러드에서 계란을 다른 토핑으로 대체한다는 안내가 쓰여져 있다. 이유진 기자 

이날 아침을 먹기 위해 맥도날드를 찾은 직장인 안준호씨(31)는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안씨는 “아침마다 맥도날드에 들려 모닝 메뉴를 먹는데 오늘은 살충제 계란 때문에 절반이 넘는 메뉴가 주문이 안 된다고 했다”면서 “살충제 계란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메뉴 절반이 안 된다고 하니 그때서야 확 와닿았다”고 말했다. 

전주콩나물국밥을 전문으로 파는 한 식당은 계란을 뺀 채 국밥을 판매한다. 메뉴판에 ‘살충제 계란 문제로 인해 국밥에 계란을 넣지 않고 판매 중입니다’라고 안내했다. 손님이 원할 때만 국밥에 계란을 푼다. 주인 김모씨(42)는 “전주콩나물 국밥에 계란이 안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나. 미칠 지경”라면서 “아직까지 손님이 확 줄었다는 느낌은 안 드는데 오는 손님마다 ‘계란 안 들어가서 아쉽다’ ‘맛이 영 덜하다’ 이런 소리를 하니까 파는 사람 입장에선 못 먹을 음식 내놓은 기분이다”면서 울상을 지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태국음식점은 ‘계란 대란으로 인해 저희 매장은 계란이 들어간 모든 메뉴를 1000원에 할인해 (계란을 제외하여) 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카페도 “정부의 계란 안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빵의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계란이 들어간 제품의 판매 중단을 알리는 점주들의 글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디저트 카페는 ‘정부의 전수 검사 판정이 확정될 때까지 임시 휴무를 하겠다’며 글을 올렸고, 부산의 한 빵집도 ‘살충제 계란의 안정성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란이 들어간 디저트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한편 또 다른 점주들은 SNS에 ‘안전성분석 결과 통보서’와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서’를 인증하며 제품의 안전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살충제 계란’ 파문]시민들 “이유식에 계란 안넣어”···음식점 “계란은 원하면 넣어줘”

■ 마트 “계란 사용 즉석식품도 판매 중단” 

한 대형마트의 계란판매 코너는 ‘계란 판매 중단’을 공지한 알림판이 세워졌다. 평소에 계란으로 가득 찼던 매대는 라면과 스팸, 햇반 등으로 대체됐다. 매대 사이사이에는 ‘알려드립니다. 계란 판매 중단. 소비자 식품 안전을 위해 정부의 계란 안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란 판매를 잠정적으로 중단하오니 고객님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란 안내문구 적힌 알림판 붙었다.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 양평점의 즉석식품 판매 코너에 계란 사용 즉석식품 판매 중단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유진 기자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 양평점의 즉석식품 판매 코너에 계란 사용 즉석식품 판매 중단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유진 기자 

마트 한편에 있는 즉석식품 코너도 사정은 비슷했다. 계란말이 등이 놓여있던 매대에는 ‘계란 사용 즉석식품 판매 중단’이라고 적힌 알림판이 놓였다. 마트를 찾은 주부 최연수씨(30)는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계란이 안 되면 그럼 계란이 들어가는 면은 먹어도 되나. 이런 걱정이 꼬리를 문다”며 “특히 애기 분유에도 계란이 들어간다고 해서 어제 밤잠도 설쳤다”고 했다. 8개월 아이를 키우는 최씨는 “친한 애기 엄마들끼리 있는 단체 카톡방에 ‘애기 분유를 계속 먹여도 될까’ 물어봤지만 ‘된다. 안 된다’를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다들 발만 동동 굴렸다”고 했다. 

소규모 마트들도 타격을 입었다. 광진구 중곡동의 한 슈퍼마켓의 부점장 이모씨(51)는 “30개들이 1판 기준으로 40~50판 정도 팔렸지만 살충제 계란 파문 이후 10판밖에 안팔렸다”라며 “3~4명이 환불해 달라고 해서 환불해줬다”고 했다. 구의동의 한 마트 주인은 “1~2달 정도 계란을 못판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라며 “보통 계란을 사러 왔더라도 생각난 김에 다른 식품들도 함께 사는데, 계란 때문에 아예 손님들 발길이 끊길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이유진·이재덕·윤승민 기자 yjleee@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