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개가 있는 존재들에게 땅의 경계는 대개 의미를 잃는다. 한반도의 그 어느 땅보다 인간에 대한 경계가 삼엄한 비무장지대(DMZ)는 이곳을 유유히 오갈 수 있는 새들과 곤충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DMZ는 학자들의 관찰 대상이자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원천이다.
경기 파주시 일대에서 지난 11일 개막한 ‘DMZ OPEN 전시 : 언두 디엠지’는 생태 공간으로서의 DMZ를 여러 형태의 현대미술로 표현한 전시다. 작가 10명의 작품 26점이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과 민간인 통제구역인 갤러리그리브스, 통일촌 마을에 나뉘어 전시됐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가 2020~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평면 인쇄 작품 ‘디엠지 비행’이 DMZ와 가까운 민통선 내 통일촌 마을 수매창고 한가운데에 놓였다. 작품의 영문명은 ‘DMZ Un-Do’로 전체 전시명이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 DMZ 비행을 벽으로 삼아 그 뒤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상 ‘황색 춤’(2024)이 상영된다. 꿀벌 ‘봉희’가 가상의 전후 강원도 철원을 오가며 겪는 일을 소재로 한 6분의 영상이다.
양혜규는 전시 개막일에 기자들과 만나 “(DMZ는) 접근성이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추상성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홍영인은 DMZ에서 두루미를 마주한 뒤 깊은 인상을 받고 두루미 다리 모양의 신발을 설치한 작품 ‘학의 눈밭’(2024)과 자신의 목소리를 두루미 소리로 변환한 음향 작품 ‘우연한 낙원’(2025)으로 만들었다. 양혜규와 홍영인의 작품은 지난해 말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전시 ‘언두 플래닛’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데 실제 DMZ 근처로 무대를 옮겨 의미를 더했다.
캐나다 출신 작가 아드리안 괼너는 2023년 DMZ를 방문해 조류를 관찰한 뒤 그들의 모습을 300여장이 넘는 수채화로 그렸다. 이 중 50여점이 ‘흔적’(2023)이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 남았다. 2019년부터 파주의 DMZ의 생태 환경을 조사해 온 박준식은 DMZ 내 동·식물의 잔해를 모아 보존했고, 그 표본과 각 동·식물의 설명을 볼 수 있는 QR코드를 함께 배치한 ‘비(悲)옥한 땅에 핀 꽃’(2019~)를 선보였다. 덴마크·일본 혼혈 작가인 실라스 이노우에는 작품의 소재를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로도 확대했다. DMZ 인근에서 흙과 나뭇가지, 플라스틱 조각을 수집한 뒤 아크릴통 안에 담고는 그 안에서 박테리아를 키워내 ‘인프라스트럭쳐’(2024)라는 작품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DMZ에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들도 작품이 됐다. 오상민은 폐기 예정이던 아라미드 원사(방탄복 소재)로 버섯 모양의 전등 ‘쏘일 투 소울’(2024)을, 철조망을 상징하는 금속 원사를 직조해 자생 넝쿨식물 모양의 패널로 엮은 ‘빛 : 자연과 선의 틈에서’ 연작(2025)을 만들어냈다. 사진작가 김태동은 DMZ 내에서 움직이는 별에 초점을 맞춘 ‘플라네테스’ 연작을 2017년부터 만들어 오고 있다. 카메라에 적도의를 장착해 별의 궤도를 따라 촬영하다 보면 한국전쟁의 흔적인 노동당사, 백마고지 등이 흔들린 모습으로 찍힌다. 전쟁이 일어난 듯 흔들리는 DMZ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인간이 지켜 온 문명은 별이 형성된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의 통일촌 마을에서는 실제 쓰이고 있는 수매창고를 전시장으로 꾸몄다.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는 평화관광 셔틀을 예약·이용해야 한다. 50여년간 미군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에 마련된 갤러리그리브스는 평화곤돌라를 이용해야 접근할 수 있다. 두 곳에서의 전시는 오는 10월19일까지, 민통선 밖에 있는 평화누리공원에서의 전시는 오는 11월5일까지.
- 파주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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