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존 엘리지 지음 | 이영래·김이재 옮김
21세기북스 | 416쪽 | 2만4000원

1650년대 잉글랜드에서 탄생한 다운 서베이 지도는 최초로 ‘완전한 국가적 측량에 기반한 정식 근대 지도’였다. 지도 제작과 측량 작업은 잉글랜드가 아일랜드를 침공한 뒤 생긴 채무와 밀린 군 급여를 상환하기 위해 아일랜드 ‘반란 세력’의 토지를 몰수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이후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사람은 토지에 방문하지 않고도, 잘 측량된 지도 하나만 찾으면 됐다. 잘 만들어진 지도는 정치적인 도구가 됐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지도에 그은 선은 같은 민족을 다른 나라로 쪼개거나 적대적인 민족을 한 나라로 묶었다. 런던 경제정책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민족이 국경에 의해 분리된 지역에서는, 분리되지 않은 지역보다 민간 분쟁의 강도(사망자 수와 지속 기간 기준)가 약 25%가 높았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국경은 때로 유럽 당국자들의 피곤함 때문에 무성의하게 그려졌고, 이는 분쟁의 씨앗이 됐다.
인도에서 파키스탄이 독립을 선언한 뒤 이틀이 지나서야 두 나라의 경계선이 확정됐다. 한 지역에서 함께 살던 힌두교도와 무슬림은 순식간에 적이 돼 서로를 공격했다. “어떤 이들은 강제 개종의 수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했으며, 일부는 가족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사망자는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을 초래한 국경선 결정은 그전까지 인도를 가본 적이 없던 영국의 시릴 래드클리프 경이 한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지도를 실시간 확인이 가능해진 2014년, 구글 지도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 영토로,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영토로 표기했다. 지도를 제공하는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크지만, 그들도 각국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눈치를 봐야 했다.
국가와 지역의 경계가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소개했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전쟁이 시작됐다가, 두 열강이 발을 빼길 원하며 휴전이 성사됐다는 설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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