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단어가 스며드는 순간

황선엽 지음

빛의서가 | 328쪽 | 2만2000원

김동인의 소설 <감자>의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사실 고구마다. 지금의 고구마가 1764년 한반도에 들어와 감자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약 60년 뒤 유입된 지금의 감자에 이름을 뺏긴 것이다.

이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국어학자인 저자는 “유럽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고구마를 potato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감자가 더 많이 전파되며 그 이름을 가져가버렸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 “아무래도 주식으로 삼기에는 감자가 더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단맛이 강한 고구마보다 지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했던 감자가 더 널리 퍼진 뒤 이름까지 뺏은 것이다.

후추 역시 ‘고쵸’로 불리다 후에 들어온 고추에 이름을 내주고 ‘호초’로 불렸다. 고추가 국내에서 재배가 가능했으므로 수입에 의존했던 후추를 대체하며 벌어진 일이다. 저자는 “언어와 문화의 세계에서 먼저 시작한 것보다 끝까지 삶에 밀착하는 것이 얼마나 더 강력한지 보여준다”면서 “내실을 다지며 본질을 채워나갈 수 있다면 늦게 시작한 여정은 깊이 사랑받는 반전의 서사를 완성해낼 것”이라고 했다.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쓰이는 지역에 따라 변화한다. 책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의 어원과 쓰임새의 변화, 오해 등을 설명한다. ‘대장균’은 대장에 사는 균을 총칭하는 말인데, 일반적인 식품 검사에서 검출되는 대장균은 대부분 인체에 무해한 균이다. 이때의 대장균은 음식이 외부 환경에 노출됐다는 지표로 쓰일 뿐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데, 언론 보도 등으로 나쁜 인식이 굳어졌다. 저자는 “대장균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것”이라며 “우리는 단어의 엄밀한 정의보다 그것이 소비되는 맥락과 문화적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을 때도 많다”고 했다.

아령(啞鈴)이 ‘울리지 않는 종’이라는 dumbbell을 직역한 말이라는 것, 낭만은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roman을 음차한 단어라는 것 등 다양한 언어 지식도 책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