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수많은 세포의 집합체다. 인간은 모여 도시를 이룬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는, 인체 곳곳에 퍼진 혈관에 비유된다. 도시는 국가로, 국가는 지구라는 행성으로, 행성은 은하계로 점차 확대된다. 이렇게 보면 주변을 둘러싼 이질적인 대상들은 사실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 출신 사운드아티스트 료지 이케다(59)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상 ‘data-verse’ 연작 1~3편(2019~2020)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케다에게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 인간 게놈 프로젝트 등에서 활용한 유전자 정보부터 우주 관측 자료를 총망라해 시각화한 작품이다. 불 꺼진 전시장의 한쪽 면 40m를 가득 메운 데이터들이 규칙적인 기계음과 함께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전시 중인 료지 이케다의 ‘data.flux [n˚2]’. 광주 ❘ 윤승민 기자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이케다를 조명한 기획전 ‘2025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가 10일 문을 열었다. 이케다는 1990년대부터 소음을 바탕으로 전자음악을 연구해왔고 이를 융·복합해 비주얼 아트 등 설치 작품으로도 확대해 온 작가다. 2009~2010년 오스트리아 린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 2014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2018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ACC가 문을 연 2015년 데이터를 패턴화해 기계음과 함께 전시한 설치 예술 ‘test pattern [n˚8]’을 선보인 인연으로 ACC 개관 10주년 전시에 참여했다.

이케다는 이번 전시에 신작 4점을 포함해 작품 7점을 선보인다. 대표작 ‘data-verse’만큼 눈에 띄는 신작은 천장에 10m 길이로 설치된 ‘data.flux [n˚2]’와 바닥에 가로·세로 각 10m 크기 영상을 투사하는 ‘critical mass’다. ‘data.flux [n˚2]’는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숫자나 영어 등으로 바꿔 기하학적 패턴으로 시각화한 영상이다.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데이터들은 계곡물처럼 빠르게 흐른다. ‘critical mass’는 큰 터널에서 들을 법한 진동음과 함께 어둠이 동심원을 그리며 커지고, 화면을 메운 뒤 다시 빛을 비추는 형식이 반복된다.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전시 중인 료지 이케다의 ‘critical mass’. 광주 ❘ 윤승민 기자

 

단순한 데이터와 문양은 흑백의 두 가지 색으로 보이지만 화면의 빠른 흐름과 주변의 큰 소리가 더해져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일으킨다. 대형 설치 작품인 ‘data-verse’ 역시 실험실에서 들을 법한 규칙적인 기계음을 화면의 배경으로 내는데,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운 느낌을 일으킨다.

단순한 패턴을 반복하는 작품을 보노라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지만 이케다는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는 이들의 몫으로 맡기고 있다. 지난 9일 ACC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케다는 “작가가 (작품의)개념과 메시지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한다면 관객은 해석할 자유를 침해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우주와 유전자, 도시 간 네트워크 등 우리 주변 환경을 구성하는 데이터를 주로 (작품에) 사용한다”며 “그 안에 우리의 존재까지 포괄하는 철학적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전시 중인 료지 이케다의 ‘data-verse’ 연작 1~3편. 광주 ❘ 윤승민 기자

 

이케다는 “전시는 여행과 가까우며, 작곡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시각적인 작품과 사운드는 하나의 콘서트이며, 오케스트라처럼 연동된다. 그것을 전부 철저히 계산하며 (전시를) 디자인했다”며 “콘서트에서는 (관객이) 질문하거나, (공연자가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콘서트를 즐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28일까지.

 

  • 광주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