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장관…교황에 이 대통령 서신 두 차례 전달

“프란치스코 진취적, 레오는 조용하지만 잘 듣는 편”

“계엄 묻는 추기경들 질문에 한없는 부끄러움 느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3일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74)은 3일 “이재명 대통령께 ‘올해 중에 교황청을 방문해서 레오 14세 교황을 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다”며 “대통령 측에서도 ‘가까운 시일 내 교황님을 찾고 싶다’는 뜻을 교황청에 전했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이날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2021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된 유 추기경은 이듬해 5월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후인 지난 5월 새 교황을 선출한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도 참석했으며, 지난달 29일 약 한 달 간의 휴가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유 추기경은 이 대통령 측에서 레오 14세 교황 선출 후 교황 측에 두 차례 서신을 보냈으며, 본인이 서신을 교황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 측에) 가능하면 금년 중에 교황청을 방문하시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드렸다”며 이 대통령 측도 교황과의 만남을 타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은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남북 관계 회복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유 추기경은 “세계청년대회의 주제 중 남북한의 평화가 가장 큰 주제가 될 수 있다”며 “레오 14세 교황에게 남북 관계에 대해 설명드리니 잘 들으셨다. 마음속에 새겼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교황청을 방문해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은 성사되지 않았는데, 유 추기경은 “북한의 응답이 없었다”고 했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 전에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 교황청 장관으로 일했던 인연을 언급하며 “같은 숙소에 살면서 승강기에서도 자주 만났다. 매우 친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 선출 이후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메모하는 편이라고도 했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취적인 면이 강하신 분이었다. 레오 14세 교황은 훨씬 조용하시지만 잘 들으신다”며 “콘클라베 때도 그가 미국인이라는 사실보다 페루의 가난한 곳에서 20여년 선교하셨다는 점이 인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12·3 불법계엄 사태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한국에서 어떻게 계엄 사태가 벌어지느냐, 잘 벗어나길 바라며 기도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여러 추기경들이 ‘한국에 어떻게 계엄 사태가 일어나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한없는 부끄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한국 사회를 향해 “인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웃들에게 소금과 누룩 역할을 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를 향해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정치인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하셨다. 저도 생각이 같다”며 “정치인은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애를 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