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비명 “매우 잘한 결정” 한목소리
한동훈 “어떻게 실천할지 모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준비된 원고에 없던 ‘불체포 특권 포기’를 깜짝 선언했다. 민주당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인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친이재명(친명)계 의원들은 물론이고 비이재명(비명)계 의원들도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 스스로 내려놓기를 택하면서 비명계 의원들이 제기해온 지도부 거취 논란도 한동안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당 혁신을 약속하는 대목에서 원고에 없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약속했다. 이 대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며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만 일삼는 무도한 압·구·정 정권의 그 실상을 국민들께 드러내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연설 직전 비공개회의에서 최고위원들에게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할 뜻을 알렸다고 한다. 상당수 최고위원들은 “오늘 하는 게 좋겠다” “잘하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는 만류했으나 윤석열 검사독재정권과 맨몸으로 맞서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전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어젯밤쯤 결단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갈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7~8월 비회기 기간에 임시국회가 열리라도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회기를 조정하고 대표가 심사받으러 가겠다는 것”이라며 “연말까지 이 대표 체포동의안 문제로 논쟁하지 말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결단한 배경에는 방탄 논란을 돌파하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이 대표 ‘사법 리스크’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자 논란으로 도덕성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이 대표를 포함한 소속 의원 4명의 체포동의안을 줄줄이 부결시켜 궁지에 내몰렸다. 실제 이 대표는 연설 직후 기자들이 ‘왜 지금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나’라고 질문하자 “정치집단들의 이익이 아니라 민생과 나라 살림을 챙겨야 할 때이기 때문에 더이상 이런 문제로 논란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민주당 새 혁신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혁신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중도 담겨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기를 주요 정치 혁신안으로 제시할 예정이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선제적으로 포기하면서 국민의힘 공세를 되받아친 셈이다. 민주당은 20일 혁신위원 10명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첫번째 혁신위 회의도 열 예정이다.
당내에서는 친명과 비명 의원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졌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재명답다. 국민과 정의의 승리를 믿는다”고 적었다. 비명계 이상민 의원도 SNS에 “매우 잘한 결정”이라며 “검찰의 공권력 오남용과 맞서 싸우는 당당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주철현 의원은 “살신성인의 결단”이라고 적었다.
이번 선언으로 이 대표 거취를 둘러싼 당내 논란도 한동안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명계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선언으로 대표 거취 문제가 사그라드는 효과가 있다”며 “대표가 자신을 던졌으니 당 입장에서는 보호하는 것이 순리이고 우리가 대표한테 사퇴하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상당수 의원이 이 대표 체제를 10월까지 유보하고 지켜보는 식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이 대표의 선언이 민주당이 방탄정당의 오명을 씻고 혁신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여당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며 이 대표의 약속을 깎아내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이 여러 차례 보여준 공수표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이 약속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미 겹겹이 방탄조끼를 입어놓고서 사과 한마디 없이 큰 결단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제 와 ‘구속영장이 오면 응하겠다’는 모습은 몰염치의 극치”라고 평가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대표 연설 후 기자들에게 “일단 적어도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 따라서, 그 절차 내에서 행동하겠다는 말씀은 기존에 하셨던 말씀보다는 좋은 얘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중요한 건 대한민국 다른 국민들과 똑같이 형사사법 시스템 내에서 자기방어를 하면 되는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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