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P21갤러리에 전시된 신민 작가의 ‘유주얼 서스펙트’. 윤승민 기자

 

“홍콩에서도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광경을 봤습니다. 해외에서도 제가 던지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걸 보는 게 뜻깊은 경험이었어요.”

작가 신민(40)에게는 지난 3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수상 작가라는 이력이 추가됐다. 그는 아트바젤 홍콩에서 신진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제정한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어워즈’의 후보 3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더니 첫 수상자의 영예까지 안았다.

그의 예전 삶의 터전이자 작품의 주된 대상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약 10년간 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던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아트바젤 홍콩에서 선을 보였고,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용산구 P21갤러리의 전시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주얼 서스펙트’ 연작도 그렇다. 흙빛 종이에 그려진 둥근 얼굴들은 머리망으로 머리를 묶고 흰 마스크를 쓴 채 둥근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그림 배경이나 조각의 주된 색이 흙빛인 건, 그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퇴근 후 챙긴 감자튀김 포대를 사용해 초창기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P21갤러리에 전시된 신민 작가의 ‘유주얼 서스펙트-민정’. 윤승민 기자

 

“(음식점)‘고객의 소리’에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의견이 접수되면, 매장은 ‘점수가 깎였다’며 CC(폐쇄회로)TV를 돌려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음식을 마지막으로 만든 게 누구인지 찾아냅니다. 노동자들은 서로를 의심하듯 보고요.” 신민의 설명을 듣고 나면 그림과 조각 속 머리마다 가닥가닥 그려진, 또는 돌출된 머리카락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최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털을 떨구지 않도록 긴장하는 매장의 분위기, 머리카락의 범인을 물색하던 경험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와 같다”며 “마스크와 머리망을 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자기도 모르는 새 머리가 산발이 된 상태로 서로 의심하는, 슬프지만 현실적인 노동 현장을 그렸다”고 말했다.

음식에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빗질을 하다 보면 바닥에 나뒹굴게 되는 털이 전시장에서는 크게 확대돼 나타난다. 신민은 “소비자에게 머리카락은 소름 끼치고, 벌레보다도 더 징그럽고 역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며 “머리카락은 인간 노동자의 흔적인데, 우리는 왜 여기서 혐오감을 느끼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민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르바이트 노동자’ 외에 ‘여성’이라는 점도 공유한다. 함께 전시된 유주얼 서스펙트 연작 조각 2점에는 ‘찬미’, ‘민정’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전 작품에도 여성형 이름들이 자주 붙는다. 그는 “임금이 낮고 강도 높은 서비스직은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작가 신민이 서울 용산구 P21갤러리에 전시된 ‘유주얼 서스펙트-민정’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승민 기자

 

신민의 P21갤러리 전시는 오는 17일이면 끝나지만, 전북 완주군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그의 또다른 전시 ‘아이스크림 똥’이 오는 10월26일까지 열린다. 아이스크림과 형태가 비슷하지만 사회에서 배제의 대상이 된 똥은 노동자의 머리카락과도 닮았다.

올여름에는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어워즈 수상자 자격으로 MGM 마카오 호텔에서도 전시를 연다. 신민은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오가며 작품을 볼 때 느끼는 통쾌함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며 “제가 사회운동을 하기엔 말발과 지식이 달리지만,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시각화할 때 분노와 부당함, 슬픔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