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수를 하듯 실점 없는 투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는 투수가 나타나면 팬들은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올 시즌엔 넥센 김상수(30)에게 그 별명이 붙었다. 지난 20일 고척 삼성전에서 0.2이닝 동안 3실점하기 전까지 19경기 19이닝에서 자책점이 하나도 없었다. 올 시즌 처음으로 10홀드 고지를 돌파한 ‘홀드 1위 투수’라는 타이틀보다 인상적이던 김상수의 무실점 행진은 그 때 시즌 첫 패배와 함께 끝났다.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이 그에게 짐이 됐을까. 지난 22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만난 김상수는 무실점 기록이 깨진 것이 “마냥 홀가분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는 “다음 투수가 3루타를 맞아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내가 주자를 3명이나 내보내 투수에게 부담감을 줬다”며 “실점했다는 사실보다는 과정이 좋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경기의 세세한 내용까지 복기할만큼 김상수는 자신의 투구를 열심히 분석하는 투수다. 그는 “평균자책점이나 홀드·블론세이브 같은 기록은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시즌 끝나면 최종 기록이 나오게 마련”이라며 “내가 어떤 타자에게, 어떤 코스로 승부하다 맞았는지 주로 연구한다”고 했다. 투수라면 마운드에 섰을 때 포수의 사인대로 잘 던지는 것만큼이나 마운드에 오르기 전 ‘어느 타자에게 어떤 공을, 어떤 코스로 던져 승부할지’를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석의 중요성은 그가 후배들에게도 강조하는 점이다. 김상수는 지난해부터 넥센의 투수조 조장을 맡아 스스로를 ‘잔소리꾼’이라고 칭할만큼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건넨다.
“경기장에 일찍 나와라, 웨이트트레이닝 열심히 해라, 자신의 투구와 상대의 타자를 분석하고 필기해라….”
조장이자 선배로 느끼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효과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상수는 “지금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것들을 군대(상무)에 있을 때부터 해왔다”며 “5년째 하다보니 이제는 루틴처럼 굳어졌다. 하루라도 지키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김상수는 후배들에게 시킨대로 스스로 움직인다. 경기장에 일찍 와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지 않고, 타자들을 분석한다. 먼저 솔선수범해서 스스로가 좋은 투수가 돼야 후배들이 잘 따를 거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김상수는 좋은 습관을 들인 후로 더 나은 투수가 됐다. 삼성 주전 유격수와 동명이인인 불펜 투수에서 군 전역 후 필승조 요원으로, 셋업맨으로, 그리고 마무리로 거듭났다. 지난 시즌 초반 김세현(현 KIA)이 부진하자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를 맡아 15세이브를 거뒀다.
김상수는 “좋은 습관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좋은 투수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최원태가 좋은 습관을 들인 후 올해 좋아졌다”고 말했다. 최원태는 한 번의 완투를 포함해 올 시즌 5승(4패)에 평균자책점 3.60으로 차세대 우완 에이스로 거듭났다. 김상수도 “이제 원태에게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팀에 좋은 투수들이 많다”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리도 1~2년 뒤에는 뺏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잔소리’도 후배들을 챙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넥센 관계자는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투수들에게 격려를 건네는 선수”라고 귀띔했다.
김상수는 미스터 제로라는 부담스런 별명은 벗어던졌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구원 투수 역할을 해야 한다. 인터뷰 다음날 마무리 조상우가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상수는 임시 마무리 투수가 됐고,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투수조 조장으로 다잡아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됐다. 김상수는 “부상없이 시즌 끝까지 잘 던지고 싶다. 못던진 뒤 핑계대고 싶지 않고, 공 하나 하나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고 했다. 바람 잘 날 없는 팀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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