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는, 바로 나에요. 나이가 들어서는, 나의 예술이 내가 돼서, 이 속에서 어떻게 표현이 나올까. 하나가 돼서 (작품이) 나오는 거고… 그게 (젊을 때와) 다른 거 같아요.”
조각가 김윤신(91)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11일 열린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큰 나무를 전기톱으로 깎아가며 작품을 만든 김윤신은 1955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한 이래 70년 넘게 활동한, 한국 여성 조각의 선구자다. 오랜 기간 남긴 작품이 1500여점에 이르는 데도, 새 전시에 어울리는 신작을 만들어야 한다고 서두르는 현역 작가이기도 하다.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김윤신의 예술 여정을 망라한 이번 회고전의 제목이자, 김윤신이 자신의 작업 이념을 설명하고자 만든 말이다.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뜻이다. 그가 만든 많은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며, 그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김윤신은 “(작업) 구상을 미리 하면, (작업할 때 그 구상은) 이미 ‘지나간 것’이 돼버리곤 한다”며 “머리가 깨끗해서 아무 생각 안 할 때 톱을 들면, 그때부터 공간이 보이면서 잘라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무들이 단단해서, 톱하고 내가 하나가 돼야 한다. 톱을 내가 맘대로 돼서 움직일 수 있어야 작업도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대로 된다”고도 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만 볼 수 있던 두껍고 단단한 나무와 돌도, 그것을 잘라내는 전기톱 같은 도구도, 작가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작품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김윤신은 아르헨티나로 건너가기 전에도 나무 조각을 만들었다.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시골에서, 산 밑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며 “걔(나무)들이 내 친구란 생각으로, 나무를 작업해서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친구인 내 마음이다. 그래서 나무(작품)가 오늘날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전시에는 아르헨티나 이주 전인 1970년대의 ‘기원쌓기’ 연작부터 지난해 만든 신작 알루미늄 조각 ‘노래하는 나무 2013-16V1’(2025)까지 작품 총 175점이 전시됐다.
남미의 큰 나무로 만든 조각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눈에 들어온다. 한 작품도 어딘가에는 나무줄기의 거친 표면이, 다른 방향에서는 안쪽 표면이 도드라진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그의 나무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1987)은 이번에 처음 대중에 공개된다. 한참 수직 방향으로 솟은 조각을 만들던 김윤신은 1990년대 들어서는 좌우로 팔을 뻗은 조각들을 만들어가고, 다양한 색의 돌 조각에도 도전한다. 자르고 나서야 비로소 다양한 색깔과 질감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돌은 김윤신이 이후 조각 작업에 본격적으로 색채를 더하도록 했다.

김윤신은 1960년대 파리에서 유학하며 석판화를 배우고 드로잉과 회화도 만들었다. 조각의 옆에 드문드문 조각과 닮은 그의 그림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대 들어서는 나무 등으로 만든 조각에 형형색색을 더한 ‘조각-회화’로도 영역을 넓혔다. 김윤신은 “밖에를 못 나갔다. 나무조각을 주워서 작업했다. 어렸을 때 많이 하던 장난처럼 나무에 뭘 붙이고 그었다”며 “한국에 와서 ‘회화-조각’이라는 단어를 내가 만들고 세상을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각과 그림이 서로를 닮아가다 비로소 하나가 된 것마저도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연상케 한다.

김윤신은 야외에서 자신의 조각을 선보일 기회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전시 막바지에 놓은 신작 알루미늄 조각은 이를 염두에 둔 시도이기도 하다. 김윤신은 “평생을 해 온 작품이 후세에 좋은 영향을 줘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7일 개막해 6월28일까지 열린다. 관람료 2만5000원.
용인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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