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

강민경 지음

푸른역사 | 288쪽 | 2만2000원

이완용이 쓴 ‘행서 사시청일색’.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매국노’ 이완용이 ‘명필’이었다는 설이 있었다. 이완용의 글씨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명필’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이마저도 드문” 게 현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는 저자는 이완용이 “근대 한국 예술계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관련 연구를 책으로 펴냈다.

이완용 전기 <일당기사>에 따르면 이완용은 1873년부터 이용희에게서 글씨를 배웠다. 이용희는 추사 김정희에게 ‘세한도’를 받은 것으로 유명한 역관 이상적의 사위로 추정된다. 이완용도 “김정희로부터 시작하는 조선 말기 서예사의 계보 안에 위치”한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완용의 글씨가 고평가된 이유가 “이완용의 정치적·사회적 위상이 높았기 때문”이며 “이완용의 글씨를 가지거나, 그의 글씨로 된 현판을 걸 수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위세를 보증하는 징표이기도 했을 터”라고 했다. 저자는 “이완용이 글씨를 잘 쓴다는 평가가 일제강점기 이전 사료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한다.

이완용은 1912년 ‘서화미술회’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서화미술회의 후신인 서화협회가 일제 침략에 맞선 단체였으며, 근현대 한국화단의 중진과 원로를 여럿 배출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3·1운동과 관련돼 일본 경찰에 고문을 받고 숨졌던 초대 서화협회장 안중식은 서화미술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완용과 교류하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 친일·반일 지식인의 교류에 대해 “지식인이 서로 공유하는 관심사를 교유하고 여러모로 도와주는 일이 요즘도 드문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했다.

다만 저자는 한국이 독립한 후 이완용의 글씨 값어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면서 “아무리 재주가 있는 인물이었다 한들, 나라를 팔아가며 권력과 영화를 누린다면 그 끝이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지 알 만하다”고 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