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23·한국체대)는 덤덤했다. 한국 동계스포츠 설상 종목 선수들이 여태껏 갖지 못한 메달을 처음 목에 건 데 대해 “자랑스럽다”고는 했지만, 흥분한 기색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믿기지 않는다”고만 했다.
다만 4강전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4강전. 이상호는 이날 경기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던 블루 코스에 섰다. 상대는 예선 2위 잔 코시르(34·슬로베니아). 중반까지 뒤지다가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0.01초차 역전을 일궈냈다.
이상호 역시 “이긴 줄 몰랐다.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전광판을 봤는데 ‘빅 파이널(결승전)’ 진출 표시가 떴다”고 했다 그 순간 이상호는 “기쁘고 놀랐다”고 했다. 화면에는 두 손을 불끈 쥐며 포효하는 이상호의 모습이 잡혔다.
하지만 가장 기쁜 순간을 맞이하기 전 이상호는 평정심을 유지했다고 했다. 이상호는 “코치님으로부터 ‘4강 진출’이면 잘 한거다. 네가 8강까지 타던대로 타면 아무도 너 못이긴다‘고 말해주셨다”며 “부담은 갖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평정심으로 올림픽을 맞았다. 이상호는 “특별히 피하고 싶던 선수는 없다. 어차피 월드컵 무대에서 항상 겨뤄왔던 선수들이다”라며 “언젠가는, 어차피 만났어야 하는 선수들”이라고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치른 2017~2018 시즌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 성적이 생각보다 저조해도, 이상호는 “올림픽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라며 조급해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은 피하고, 갑작스러운 변수도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주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여기에 고향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이 더해졌다. 이상호는 “홈 이점은 없었다”고 했다. 올림픽 코스가 대회를 앞두고 만들어져 많이 타진 못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예선을 마치고 가족들의 전화를 받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스노보드 알파인 대표팀의 이상헌 코치는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얻지 못하고 1월말 귀국한 상호에게 8일간 휴가를 줬다”며 “휴가를 마친 상호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가족들과 집밥먹으며 지낸 게 홈 어드밴티지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처럼 ‘이상호 키즈’가 기대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상호는 “‘이상호 키즈’는 이미 많아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바람을 전했다. “스노보드가 다른 동계종목보다 후원, 지원을 못받고 있는거 같아서 아쉬워요. 훈련 여건이 갖춰지면 정말 잘할 수 있겠다 싶은 후배들이 많거든요.” 그러고는 ‘스노보드의 김연아’가 되겠다는 목표에 대해 “어느 종목 선수든 김연아를 롤모델로 삼을 것”이라며 “이제 어느 정도 다가간거 같아서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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