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 두산의 호주 1차 스프링캠프 출국 현장에서 정상호(38·두산)는 “아직 두산에 온 게 실감이 안난다”고 했다.
서른여덟, 은퇴를 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정상호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두산과의 계약소식이 발표된 게 캠프 출발 일주일 전인 지난달 23일이었다. LG와의 FA 4년 계약이 마무리된 뒤 방출됐던 정상호는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어 기뻤다”며 두산의 손길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소속팀이 정해지지 않았던 연초에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정상호에게서 겹쳐 보이는 선수가 있다. 지난해 한화를 떠난 뒤 두산과 계약했던 배영수(39), 그리고 선수 은퇴 기로에 놓였다가 선수 생활을 연장한 LG 포수 이성우(39)다. 둘은 모두 1981년생으로, 지난해 만 38세에 새 둥지에서 선수생활을 이었다. 공교롭게 1982년생 정상호도 올해 서른여덟 나이로 새 출발선에 섰다.
두산이 정상호에게 기대하는 건 지난해 배영수의 역할이다. 두산은 배영수를 마운드 예비자원으로 요긴히 활용하면서 젊은 투수의 멘토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배영수는 후배들과 격없이 지내며 자신의 오랜 선수생활 경험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정상호에게 기대하는 역할도 지난해 배영수와 비슷하다. 배영수처럼 정점의 위치에 오른 적은 없지만 SK에서 주전포수로 쌓은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두산의 주전포수 자리는 박세혁이 굳건히 지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상호는 젊은 포수들과 백업 경쟁을 벌인다. 두산 캠프 최연소 선수인 신인 포수 장규빈(19)의 멘토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호는 “김태형 감독님이 야구 외적으로 어린 선수들 이끌어달라고 당부하시는 것 같다. 저도 후배들이 경기 운영 등 궁금한 걸 물어보면, 알고 있는 한 자세히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은 정상호를 단순한 멘토로만 보고 영입한 것은 아니다. 김태형 감독은 “이흥련, 장승현도 있지만 다른 포수들이 다치면 (정)상호가 뒤를 받칠 것”이라고 했다. 당장 ‘첫번째 백업’ 자리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지만, 정상호의 풍부한 경험은 팀내 다른 포수들이 갖지 못한 경쟁력이다. 포수들의 줄부상이라는 만일의 사태라도 터진다면 정상호는 훌륭한 대체자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이성우가 겹쳐진다. 이성우는 2018시즌 후 SK로부터 프런트 보직 제의를 받고 선수 은퇴 기로에 섰다가 LG와 계약했다. 기대치는 높지 않았으나 백업 포수의 부상으로 5월말 1군 엔트리에 들었고, 유강남까지 부상으로 빠진 6월에는 주전으로 나서 공백을 메웠다. 성적이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이성우는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었다.
배영수는 서른여덟 시즌 후 은퇴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성우는 올 시즌 지난해(7000만원)보다 인상된 8000만원에 계약해 선수생활을 연장했다. 정상호는 “올해가 마지막일 될 수 있다”고도 했지만, 좋은 기회를 잘 살린다면 그가 꿈꿨던 ‘42세까지 현역 선수로 뛰는 것’도, 한 번 더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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