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지사 경선 수행팀장 출신 문상철씨
정치구조 변화 뜻 담은 ‘몰락의 시간’ 출간
“지도자 보필 조직에 건강한 토론·반박 필요
정치인은 영웅 아냐, 시스템적으로 검증 해야”
“사회가 모두 알고 토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있던 일을 담담히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대선 경선 수행팀장 출신 문상철씨(40)는 최근 책 <몰락의 시간>을 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씨는 2011년 안희정 도정 1기 충남도청에 입사해 2017년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당시 안 전 지사 수행팀장을 지낸 측근이었으나, 국회의장실에서 일하던 2018년 3월 안 전 지사 성폭행이 폭로된 후 피해자 김지은씨를 도우며 검찰 조사에 응했다. 2020년 5월 정치권을 떠난 그는 최근 약 3년 반 동안 수도권 한 기업에서 임원으로 재직했고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퇴사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다. (전말을) 답해 드리면 ‘혼자서만 알고 있을 사유재가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으니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과거 일을 직면하다가 꺼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라 (책 집필을) 미루다가 오래 미뤄둔 숙제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문씨는 해당 사건을 떠올리며 “사건 다음 날 안 전 지사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과문을 올렸던 것처럼 처음에는 상식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후 (안 전 지사 주변에서) 피해자를 공격하고 마녀화하는 과정, 인권을 짓밟은 모습을 보면서 정치에 대해 깊은 환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자의 이력과 책의 제목을 보면 <몰락의 시간>은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 전 지사를 몰락케 한 성폭행 사건을 주로 다뤘을 것만 같다. 책에는 해당 사건을 당연히 언급했지만, 문씨는 충남도청과 대선 경선 캠프에서 봤던 안 전 지사가 한국 정치 구조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풀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한 지도자를 보필하는 조직에 건강한 토론과 반박이 존재한다면 이런 일(성폭행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며 “지도자의 말에 ‘노(No)’하지 못하는 상황이 ‘위력이 닿는 사람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고 말했다.
문씨는 안 전 지사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기 전부터 함께 하며 체계 없이 관계만 신경썼던 ‘운동권 출신’ 측근들, 단체장의 심기를 보전하면서 고급 정보와 인사를 독점하는 지자체의 ‘의전 카르텔’을 문제로 지적했다. 대선 경선 후보 수행팀장으로 안 전 지사를 가까이서 보좌했을 때의 일들은 220여쪽 중 67쪽을 할애하며 팬덤과 역술인, 로비스트들이 안 전 지사에게 접근해 온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는 “대선 때는 (정치인이) 전국 각지 돌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기 때문에 지자체장 때보다 더 큰 환호와 비난을 받는다”며 “(그 과정이 정치인을) 나약하게 만든다. 그 자리를 팬덤이나 역술인 같은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해 ‘노무현의 왼팔’ 안희정과 함께 정치를 시작했지만 “한 명의 영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검증하고, 걸러내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웅을 통해 세상이 바뀐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정치인 한 명에게 기대는 게 너무 많다”며 “대통령 한 명을 만들면 수천 수만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엽관제가 지금의 정치 체제가 변하지 않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책을 낸 후 안 전 지사나 측근 정치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지는 않았다”며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도자의 의견에 반박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하도록 노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다. 정치 구조를 바꿔나가자는 뜻으로, 최대한 담담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며 “진보 진영에 계신 분들이 책에 대해 외면하지 말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먼저 반성해야 한다. 먼저 반성하는 것은 진보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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