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평양 청춘가역도경기장 내 선수휴게실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한국 역도대표팀 선수단. 왼쪽 뒤(노란색 점퍼)는 베트남 선수단. 마땅한 장소가 없어 선수휴게실 침대에서 도시락을 먹는 상황이 벌어졌다. 평양 윤승민 기자

1년여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느꼈던 남·북 관계는 바람으로 치면 훈풍이었다. 카누 단일팀은 함께 노를 저어 한반도기를 시상식 가장 높은 곳에 펄럭였다. 여자농구 단일팀의 경기 현장에서 북측 지도자가 남측 취재진 앞에서 말 몇마디를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기도 했다. 북한 역도 선수가 예상을 깨고 ‘어머니’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세상이 변하긴 했구나’라고 느꼈다.

10월 중순, 평양은 추웠다. 1년여전의 훈풍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실마리는 평양 시내 어디에도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느꼈던 훈풍은 온데간데 없고 한국 축구대표팀이 뛰었다던 텅 빈 김일성경기장처럼 휑한 기운만 가득했다. 지난달 20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측 선수단과 취재진은 냉랭해진 평양의 한파 속에 얼어붙었다.

기자는 한국에서 평양에 발 딛을 기회를 얻는 몇 안되는 직업이지만, 평양을 경험한 기자 또한 많지는 않았다. ‘했던 것’ ‘할 수 있는 것’ ‘하면 안되는 것’ 등을 평양을 다녀왔던 기자들에게 들었지만. 각자 경험한 시기가 달랐던만큼 평양 생활의 밑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속칭 ‘꼬투리 잡힐만한 것’들을 피해야한다는 것만 머릿 속에 입력했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18일, 도합 4시간의 비행을 거쳐 평양 순안공항을 밟았을 때도, 세관에서 전자 기기와 케이블을 확인하려는 북한 직원들의 끈질긴 손길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시내 사진은 절대 찍지 마시오.” 공항에서 숙소인 양각도국제호텔까지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기도 전 ‘안내원 선생’들로부터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들었을 때도 받아들이려 애썼다. 북한, 아니 북측이니까. 평양이니까.

2019 아시아 유소년·청소년 역도선수권대회가 열린 평양 청춘가역도경기장 경기대를 22일 촬영한 사진. 한국 취재진은 ‘선수단 관계자’로 분류돼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평양 윤승민 기자

평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며칠간 역도 관계자들의 반응을 듣고난 뒤 비로소 깨닫게 됐다. 2013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한 겸험이 있던 대표팀 관계자들로부터 “6년 전과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연거푸 들렸다. 그들도 북측 역도 관계자와 ‘간단한 눈 인사’ 이상의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고 했다. 따로 평양 시내를 둘러볼 기회는 기대하지도 말라고 북측에서 얘기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한국 선수단은 숙소부터 달랐다. 다른 선수들은 경기장 근처, 대회 본부가 꾸려진 서산호텔에 짐을 풀었다. 한국 선수단이 짐을 푼 양각도호텔에서 경기장까지는 이동에만 30분이 걸렸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교류는 기대할 수 없었고, 대회 관련 각종 정보를 얻는 데도 애를 먹었다. 실제 경기장과 호텔 간의 최단 이동시간이 15분 안팎이라는 건 평양에서 돌아온 뒤 검색해 알게 된 사실이다. 버스를 타고 실제 이동했던, 시내 주요 선전물들이 위치했던 경로와 최단 경로는 서로 달랐다.

하루 이동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지만 차 안에서 한 번도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때에 따라 달랐지만 선수단 임원진들과 45인승 버스를 타고 숙소와 경기장을 오갔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안내원’들이 거의 같은 숫자로 버스에 올랐다. 그들은 사진 속에 기록되지 않는 그림자이길 원했지만 마치 먹구름처럼 움직였다. 선수·코치들이 탄 버스에는 안내원들이 조금 적었을지도 모르지만, 역도 관계자들은 ‘6년 전보다 수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안내원들은 남측에서 온 모든 관계자들이 호텔 정문을 나서 바람을 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바깥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건 경기장과 숙소를 오가는 대형 버스를 타고 내리는 순간과 경기장에서 잠시 담배를 태울 때 정도였다. 숙소에서는 1층 로비나 각자 방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지난달 28일 숙소인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찍은 평양 시내 사진. 가장 높이 솟은 건물은 류경호텔. 평양 윤승민 기자

선수들의 시합 준비도 쉽지 않았다. 선수들은 경기장 내 훈련장에서, 사전에 정해진 팀 훈련 2시간 정도 외엔 충분히 훈련할 수 없었다. 호텔 내 피트니스 센터가 있었지만 이용은 불가능했다. 뭉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는 사우나 정도가 호텔에서 선수들이 누릴 수 있는 편의였다. 한 역도 관계자는 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6년 전에는 호텔 주변에서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취재 여건 또한 좋지 않았다. 혹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외신 기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기자 2명은 공식적으로는 ‘선수단 관계자’로 분류됐다. 경기장 내 취재공간이 눈에 띄지도 않았거니와, 취재 협조요청에 ‘관중석에서만 취재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남측 선수단에게 배정된 관중석’에서만. 야구장 좌석 한 블럭 정도도 안됐다. 취재에 필요한 선수 사전 정보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사진 기자 선배는 ‘그나마 사진이 잘 나오는 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했다. 인터넷을 연결해 기사 및 사진을 송고하는 일도, 경기장에서 30분을 이동해 닿는 숙소에서만 가능했다. 점심 도시락도 선수 휴게실에서 겨우 해결했고, 인터뷰할 틈은 경기장 관중석과 숙소에서 조금씩 낼 수 있었다.

경기장이 냉랭한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1500석 규모의 청춘가역도전용경기장은 개회식 이후에 1000명 이상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가끔 평양 시민들이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까지 들어서는 수준이었다. 이들이 북한 선수들의 경기 때 열렬한 환호성을 건네다가도,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경기에서 침묵하는 모습은 상상했던 대로였다.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은 한국 선수들이 등장했을 때 벌어졌다. 한국 선수가 경기대를 향해 걸어오자 관중들은 썰물처럼 경기장을 일제히 빠져나갔다. 그러다가도 한국 선수들의 차례가 끝나고 북한 선수들이 등장할 때 줄지어 들어와 관중석을 채웠다.

때로 한국 선수의 경기 때 북한 관중들이 미처 퇴장하지 못하면, 그들 사이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다른 나라 선수 경기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건너편에 앉아서도 그들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정도로 소리가 컸다. 다른 나라에서 열린 국제 대회를 경험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주니어 남자 89㎏급에 출전한 염다훈(20·한국체대)이 한국에 대회 첫 합계 금메달을 안겼던 날에도 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경기는 막판 공교롭게 남·북 대결로 흘렀다. 염다훈이 인상·용상 3차례를 모두 마친 후 북한 박금일(20)이 용상 두번을 남겨뒀다. 1차 196㎏을 힙겹게 들었던 박금일이 2·3차 201㎏에 실패해 염다훈의 합계 1위가 확정됐다. 이어진 시상식. 인상과 용상, 합계 각 부문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는 모두 자국 국기를 등에 두르고 등장했는데, 앞서 수차례 금메달을 딴 다른 북한 선수들과는 달리 박금일에게는 인공기가 없었다. 경기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오르고 애국가가 울리는 장면이 펼쳐지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평양 시민들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 경기를 마친 다음날 마주한 북측 안내원 선생으로부터 “기사나 사진을 북남 대결 구도로 몰아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며칠전부터 이어졌던 평양 관중들의 모습에, 몇 주 전 축구 대표팀 경기 때의 ‘무관중 경기’가 뇌리에 스쳐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지난달 27일 평양 옥류관에서 먹은 평양냉면.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 폐막 만찬에서 먹을 수 있었다. 평양 윤승민 기자

끝내 평양 시내를 마음 놓고 돌아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느낄 수 있던 평양의 문화는 ‘옥류관 평양냉면’이었다. 대회 초반부터 북측에서 “랭면의 ’ㄹ‘자도 꺼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은 뒤 단념했지만, 대회 폐막일 저녁 만찬장이 옥류관으로 결정됐다. 안내원들이 사진 기자 선배에게 먼저 ‘취재하시라’고 제안한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랭면의 취향’도 꽤 주관적이고 민감할 이야기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울에서 맛본 평양냉면보다 조금 밍밍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 외 하루 세끼는 모두 숙소 식당에서, 그것도 한 곳에서만 해결했다. 불행중 다행히도 다들 입맛에는 맞았다. 음식 맛에 특별히 불만을 표한 사람들은 없었다. 시합을 앞둬 개체에 통과해야 하는 선수들이 조금 고생을 했다. 다만 바람쐬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 음식이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아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도 소화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숙소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낙은 잠시 하는 인터넷 서핑이었다. 기자 둘은 각자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방을 배정받았는데, 그나마 ‘기사와 사진을 송고하겠다’는 걸 안내원들에게 알린 뒤에야 접속이 가능했다. 기사를 메일 등으로 겨우 송고하고 난 뒤 잠시 개인 메일을 보고 인터넷 서핑을 했다. 한국 포털 사이트가 접속돼 놀랐던게 생각난다. 26일 기사 송고 시간과 한국시리즈 4차전 시간이 공교롭게 겹쳐 두산의 우승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했다. 다만 이런 낙은 하루 3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어느 순간 인터넷 연결을 달리던 호텔방 모뎀의 불은 꺼져있곤 했다.

그 외에 할 수 있는건 호텔 1층 로비에서 술 몇 잔 하는 일, 방에서 누워 TV 보는 일 정도였다. 의외로 많은 채널이 잡혔다. 북한 방송 외에도 중국 CCTV, 러시아어, 프랑스어 채널을 시청할 수 있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에서 전하는 세계 각국의 분쟁 및 시위 소식을 평양에서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던 게 기억난다.

한국 방송은 나오지 않았지만,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끔 한국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날이니 22일이었을 것이다. 중국 방송으로 접했기에 제대로 된 내용을 바로 알지는 못했지만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대화만이 (비핵화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대목이 흘러나왔다. 일정의 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평양 바람이 그만큼 살이 에일 듯 차가웠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