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평양에서 열린 역도 국제대회,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에서 일주일간의 열전을 마친 한국 대표 선수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평양 여정을 마쳤다.
유소년(17세 이하) 선수 20명, 주니어(20세 이하) 선수 18명은 대회 폐막 다음날인 28일 오후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경유지 베이징에 닿았다. 대회를 치르기 위해 평양에 처음 도착한 시점은 선발대(18일)와 후발대(21일)로 나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는 웃음꽃을 피우며 함께 올랐다. 베이징발 비행기는 예정보다 40분 이상 늦게 출발했지만 선수단은 모두 무사히 베이징에 닿았다.
한국 유소년·주니어 선수들은 이번 대회 금메달 14개, 은메달 20개, 동메달 19개를 합작했다. 인상·용상 기록을 합한 합계 부문에서 금메달이 5개 나와 시상식에서 애국가를 다섯 차례 울렸다. ‘제2의 장미란’으로 불리는 이선미(19·강원도청)와 박혜정(16·선부중)뿐 아니라 남자 중량급의 황상운(19·한국체대), 이승헌(17·전남체고)이 대회 마지막 날 금메달을 쏟아냈다.
한국 젊은 역사(力士)들의 금빛 도전은 기대만큼 쉽지는 않았다. 중학생 선수 몇명을 뺀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달 초 전국체전에서 많은 힘을 쏟았고, 충분히 쉬지 못한 가운데 평양에 닿았다. 중국이 불참하긴 했지만 아시아 역도 강국인 북측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고,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예상보다 많은 역도 인재들이 실력을 과시했다.
그 가운데서 예상 밖의 금메달이 조금씩 나왔다. 23일 유소년 남자 73㎏급의 박형오(17·경남체고)가 인상에서 딴 금메달이 그랬다. 선수단도 박형오의 금메달을 쉬이 예상하지 못했고, 박형오 본인도 “원래 용상이 강했다. 인상에서 금메달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평양이란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금메달을 따서 좋았다”며 “체중관리에 애를 먹었다. 앞으로는 체중관리도 스스로 신경써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선수단 주장 염다훈(20·한국체대)이 25일 딴 한국의 첫 합계 금메달은 선수단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염다훈은 주니어 남자 89㎏급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 승부로 용상 및 합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염다훈도 메달 가능 선수로 꼽혔으나 가능성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염다훈은 “전국체전 때 페이스가 떨어져 오히려 이번 대회 컨디션이 좋았다. 목표가 ‘한국 주니어 신기록’이었다”고 스스로 품었던 당찬 각오를 털어놨다. 각오는 ‘아시아 주니어 신기록’이라는 더 큰 결과로 돌아왔다.
선수단에서 나이도 많고, 국제대회 및 국가대표 상비군 경험도 많아 주장을 맡은 염다훈은 자신을 향해 열렬한 응원을 보낸 선수단을 향해 경기 도중 두 팔을 쭉 뻗는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염다훈은 “선수들이 보고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했다”며 “다 빼어난 선수들이니 긴장하지 말고 대회 잘 치르라고 조언해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합계 금메달을 따내 시상식 때 태극기 계양 및 애국가 연주를 현실화하면서, 몸소 선수단에게 즐거운 분위기를 안겼다.
평양 대회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면서, 한국은 대회 마지막날인 27일 ‘코리안 데이’를 만들었다.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 이선미의 경우 전국체전을 치린 뒤 몸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평양에서 ‘자신의 올해 최고 경기’를 했다고 했다. 이선미는 인상에서 주니어 기록을 세울뻔 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선미는 “인상 2차에서 123㎏을 든 뒤, 3차에서 코치님은 125㎏을, 저는 127~128㎏을 들겠다고 했다”며 “그래도 확실한 쪽을 택하기로 해 127㎏를 3차 무게로 정했다”고 말했다. 127㎏는 이선미가 올해 세운 한국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87㎏ 이상) 인상 기록이다. 이선미는 우려와 달리 번쩍 바벨을 들어올렸는데,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중학생 신분이어서 전국체전을 치르지 않은 박혜정은 쾌조의 몸상태로 세계 유소년 최중량급(81㎏ 이상) 신기록까지 달성했다. 그 와중에 인상 1차시기를 성공한 뒤 폴짝 뛰며 경기대를 벗어나는 장면과, 용상 2·3차 시기를 실패하고 울 듯이 아쉬워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박혜정은 “인상이 자신없었는데, 1차부터 3차까지 내리 성공하면서 기뻤다. 그런데 거기서 긴장을 풀어서 용상 성적이 아쉬웠다”며 “저에 대해 기대하신 분들에게 실망시켰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혜정은 “앞으로는 자만심을 갖지 않고 훈련하고 시합을 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보조 운동을, 특히 어깨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 돌아가면 네살짜리 수컷 푸들 ‘똘똘이’를 제일 먼저 보고 싶다”며 웃었다. 이선미도 “올해 진천선수촌에 있던 시간이 많았다. 탁 트인 바다로 잠시 여행이라도 떠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양에서 가족·친구들과 오랜시간 연락하지 못했던 선수들은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 “푹 쉬며 아픈 몸도 관리하고 여행가고 싶다” 등등 다양한 바람들을 전했다. 선수들마다 앞으로의 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전국체전과 이번 대회까지 쉼없이 치렀던 대표 선수들은 오랜만에 찾는 집에서 그간 못이뤘던 꿀같은 휴식을 보낼 참이다.
베이징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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