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제 그림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봐주면 좋겠는데요.”
자신의 개인전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작가 변웅필(55)이 말했다. 전시 제목마저도 ‘아무렇지 않은 날들’이다. 그가 2021년 열었던 개인전의 이름은 ‘SOMEONE’, 특정되지 않은 누군가이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그림 제목 중 다수가 ‘SOMEONE’과 ‘SOMETHING’이다. 그림 속 ‘누군가’에게는 얼굴과 머리와 귀가 있어 그가 사람인 줄은 알 수 있지만 눈·코·입은 빠져있다. 그림 속 서로를 안은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짐작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작품의 의미 부여를 차단하려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변웅필의 과한 겸양의 말과 달리 그의 그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그래픽 프로그램을 통해 인쇄한 것만 같이 균일한 색상으로 채워진 그림은 흔히 볼 수 있는 유화와 마찬가지로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얼룩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림의 색은 변웅필이 직접 공들여 만들고 칠한 것이다. 그는 한 회사의 물감을 사서 직접 짜보고 색상표를 만든다. “같은 물감도 아침·점심에 그릴 때와 여름·겨울에 그릴 때 마르는 시간에 차이가 생긴다”며 한 가지 색을 칠할 때는 여러 번 덧칠하지 않고 한 번에 칠한다. “그림을 그리다가 흠집이 나면, 파리가 한 번 앉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칠한다”고도 했다. 캔버스도 화방에서 사지 않고 직접 만든다. 선도 그리지 않는다. 선을 비워 놓고, 면에 색을 채워서 선만 남겨두는 것이다. “완벽한 선을 그리기 위해 선을 그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변웅필의 대표작은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2008)이었다.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일그러뜨려 놓고, 그 모양을 그린 그림 속에는 눈·코·입이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림엔 머리카락이나 옷 등은 없고 검은 배경만 자리한다. 독일 유학 중에 인종차별을 겪었던 작가가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외부 요소를 빼버린 것이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것 또한 외면보다 내면을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렇게 규정 짓기와 거리를 둔 변웅필은 눈·코·입마저 빼버리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2021년 개인전에서의 ‘SOMEONE’을 ‘SOMETHING’에서 ‘SOMEWHERE’로까지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번 전시를 열었다. 그는 “다들 작가론을 펼치고 예술론을 표출하는데 너무 허무맹랑한 느낌도 든다”며 “동그라미와 배경만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네잎클로버나 사과도 “보시는 분들이 좋으라고(그린 것)”이라고만 했다.

변웅필은 “그림값이 왜 비싼지를 따져봐도, 그림을 띄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비싸기 때문”이라며 “그림이 학술이 되고 학문이 되며 억지로 장르가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림에 부여되는 여러 의미가 그림의 가치를 지나치게 끌어올리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신 변웅필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놀이’라고 하며, 그림을 그릴 때 들이는 정성은 ‘누군가 정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놀이 과정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과거 그렸던 일그러진 자화상도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겹쳐지며, 그가 그림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려낸 그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전시는 다음달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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