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 완산동 고분군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인 봉토분 1호. 영천시 제공

 

경북 영천시 완산동 고분군에서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 처음 발굴됐다. 무덤과 함께 묻힌 금동관,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등의 중요 유물도 영천에서는 처음 발굴됐다. 5세기 말~6세기에 조성된, 영천 지역을 지배한 수장급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19일 올해 역사문화권 중요유적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2023년부터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11조에 따라 올해까지 국비 90억원을 지원해 역사문화권 9곳의 유적 51곳에서 발굴조사를 해 오고 있다.

영천 완산동 고분군은 영천에서 가장 큰 삼국시대 고분 유적이다.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 수도 왕경(王京) 외곽과 맞닿은 곳에 있다. 경북 의성의 소문국, 경산의 압독국과 같은 삼국시대 소국인 골벌국이 영천에 자리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골벌국은 236년에 신라에 항복하고 편입된다. 다만 그 이후 이 지역을 다스린 정치 지도자급 인사의 흔적은 그간 나오지 않았다.

경북 영천시 완산동 고분군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견된 은장 고리자루칼. 국가유산청 제공

 

올해 완산동 고분군 발굴조사는 지난 8월부터 진행됐다. 조사 결과 돌무지덧널무덤이 총 3곳 발굴됐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주인공과 부장품을 넣는 나무 덧널을 놓고 그 주변에 돌을 쌓은 대표적인 신라 무덤이다.

가장 규모가 큰 1호 무덤은 시신이 묻힌 으뜸덧널(주곽)과 부장품이 묻힌 딸린덧널(부곽)이 ‘凸’자로 결합된 형태였다. 신라 수도 경주 일대의 돌무지덧널무덤과 비슷한 형식으로 지어졌으나, 주곽의 벽 일부를 허물어 부곽과 연결한 형태는 경주에서는 볼 수 없다.

주곽에서는 금동관, 금제 굵은 고리귀걸이, 유리구슬 목걸이, 은제 허리띠, 은장 고리자루칼 등이 출토됐다. 부곽에서는 금동제 말갖춤(마구류), 철기류, 다수 토기류가 함께 나왔다. 2호 무덤은 ‘凸’자 형태, 3호 무덤은 직사각형 형태였으며, 철제 무기류와 토기류가 다수 발견됐다.

경북 영천시 완산동 고분군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견된 금동관. 국가유산청 제공

 

영천에서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이 발굴된 것, 시신과 묻힌 금동관과 금제 귀걸이 등 고급 부장품이 한 세트로 함께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바탕으로 1호 무덤은 골벌국이 신라에 편입된 이후 영천 지역을 다스린 지도자가 묻혔으며, 그의 위치는 신라의 왕족 바로 아래의 상위계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관은 5세기 중반부터 지방 정치 세력에게 하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영천시는 추가 정밀조사를 통해 신라의 성장과 영천 지역 정치·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고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을 추진할 계획이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