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첫 여성 경호관 출신 배우 이수련씨
에세이 ‘청와대를 떠난 배우’ 펴낸 이유 묻자
“버티며 살아 온 똑같은 사람임을 알아줬으면”
배우 이수련씨(42)에게는 ‘청와대 첫 여성 경호관’이라는 경력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씨가 청와대를 떠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배우 이력보다는 쉽게 볼 수 없는 그의 출신이 더 주목받았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씨는 최근 에세이 <청와대를 떠난 배우>를 펴낸 이유로 “‘경호관 출신의 남다른 사람’이 아니라 ‘힘들게 버티며 살아 온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노무현 정부가 갓 출범한 2004년 여성 첫 경호관으로 뽑힌 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까지 약 10년간 청와대에서 일했다. 육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다 어릴 적 심장 수술 이력 탓에 입시에 실패한 적은 있었지만, 경호관의 꿈은 취업 준비 중 모집 공고를 보며 문득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심장 수술 흉터가 남아있다. 이씨는 “때로는 삶이 ‘부채’ 같다”며 “어떤 기회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육사를 준비하며 기른 체력, 대학교 때 영문학 전공 덕에 이씨는 청와대 첫 여성 경호관의 문을 열었다.
‘VIP’로 통하는 대통령·배우자 뿐 아니라 해외에서 온 정상들의 곁에도 그가 있었다. 이씨는 “경호관은 ‘생각하는 그림자’다. 그림자처럼 경호원도 말 없이 주변을 살펴야 하므로 VIP와 말을 섞을 여유는 없었다”며 “다만 수차례 방한한 해외 정상들이 한국을 떠날 때마다 ‘또 보자’며 인사를 주고받은 정도”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해 7월 외부 연설 도중 피습을 당한 소식을 들었을 때 과거 그를 경호하고 눈인사했던 경험이 떠올라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고 한다.
고된 훈련 만큼 힘들었던 것은 대통령 동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고 하기 싫은 일, 먹지 못하는 음식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대통령 참석 행사 때 발로 뛰며 파악한 광화문 주변 지리를 여전히 꿰고 있다. 싫어하던 추어탕과 순댓국도 자주 찾아 먹게 됐다.
그는 “‘오늘 하나를 배우면 내일은 덜 혼나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10년간 열심히 하다 보니 경호관이 돼 있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경호관이 되기까지의 삶을 ‘버티기의 연속’이라고 했다. 10년을 버틴 끝에 능숙한 경호관이 되자 ‘하고 싶은 일’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그는 “노력해도 더 달라질 것 없는 미래가 놓여있었다.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를 전했다. 미뤄뒀던 해외여행을 다니며 연극을 좋아했던 옛 모습을 떠올렸고 “다양한 삶을 살고 싶다”며 배우의 길에 섰다.
경호관으로 쌓은 경험은 이씨가 배우로 경호원 배역을 할 때만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주위를 유심히 살피던 습관은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으로 남았다. 이씨는 “운동 삼아 가끔 점심시간에 1~2시간 하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우는 게 너무 많다. 내가 손님으로 만났을 때와 배달원으로 만났을 때 가게 주인의 반응이 다르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공개된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 2>에서 배달원을 하대하는 진상 고객 연기는 그 경험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댓글에 ‘엄청 재수 없다’는 욕이 달렸는데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호관 출신 배우라는 게 알려진 건 2015년인데, 그간 책을 써달라는 요청이 있어도 고사했다”며 “배우로서 아직 이룬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배우로써도 10년차를 맞이한 그는 “비중이 작을 뿐 연기 생활은 계속 해 오고 있다. 이제는 제법 배우로의 이력이 찼다”며 “범죄자든, 아버지든 어느 배역을 맡든 공감을 주는 최민식씨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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