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 한국 선수단을 대표해 태극기를 든 기수는 투명한 고글을 쓴 브레이킹(브레이크 댄스·비보잉) 남자 은메달리스트 ‘홍텐’ 김홍열(38·도봉구청)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로도, 댄서로도 적지 않은 나이에 무릎 부상을 입고도 아시안게임 첫 브레이킹 시상대에 올랐던 투혼이 준 적잖은 울림 덕이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소속팀 연습실에서 만난 김홍열은 당시를 떠올리며 “폐회식 기수를 하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땐 그냥 ‘태극기 들고 다니면 되는 것 아닌가’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폐회식장에 가니 ‘큰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춤만 추면서 살았는데 스포츠 선수로 인정받아 여기까지 올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김홍열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외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전설의 댄서다. 중학생 때 춤을 좋아하는 친구의 동작을 따라 하던 게 시작이었다.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르며 치르는 브레이킹 대회에서 그는 이름에서 따온 별명 ‘홍텐’으로 통한다. 그가 하는 프리즈(물구나무 선 채 멈춘 동작)는 댄서들과 팬들 사이에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홍텐 프리즈’로 불린다. 그가 동작을 할 때 관중들은 ‘홍!텐!’을 연호한다. 후배 댄서들은 그를 따라하고 응용해 나간다. 20년 넘는 선수 생활을 거쳤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일 뿐 아니라 정상급 위치에 있다. 김홍열은 아시안게임 직후 열린 ‘2023 레드불 비씨원 월드파이널’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브레이킹 댄서들 사이에서 월드컵으로 통하는 이 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한 선수는 김홍열 포함 두 명뿐이다.
꾸준한 선수 생활을 이어간 비결을 묻자 김홍열은 “건강한 몸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라며 “타고 나지 않았으니 어떤 동작을 할지 더 고민을 많이 했고, 그러면서 춤이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댄서 생활 초기에 목표를 잃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춤을 그만두고 6개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며 “그때 내가 춤을 좋아했다는 걸 생각하고 그만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최근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등 예능을 통해 댄서들이 전보다 조명받고 있지만, 아직 국내 젊은 댄서들의 비율은 유럽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한다. 김홍열은 “아무래도 수입이 많은 직업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권하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며 “K팝 문화가 커졌지만 댄서보다는 대중에 관심을 받는 가수를 더 많이 꿈꾸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변화의 기미는 브레이킹이 스포츠로 인정받으면서 찾아왔다. 브레이킹은 올해 아시안게임뿐 아니라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는 “진천 선수촌에 함께 있던 다른 종목 선수들도, 다른 종목 팬들도 운동선수 같지 않은 우리(브레이킹 선수)들 몸을 보고 ‘어느 종목 선수냐’ ‘응원단 아니냐’고 물었지만 브레이킹 대표 선수라고 하니 신기해하며 축하해주셨다”며 “댄서를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이 ‘언제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거냐’고 하셨다. 아시안게임 후에는 어머니 교회에 저의 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걸렸다”고 말했다. 그간 대회 상금이나 행사 수입으로 주로 생활했던 김홍열도 지난 9월 창단한 도봉구청 브레이킹팀에 들어가며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는 마흔을 바라보는 김홍열에게 넘어야 할 벽이다. 그는 “지난해 말에 왼팔에 마비가 와서 목이 좋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때 대회도 나가지 못하고 ‘춤을 그만 춰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2주 전에는 넘어져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무릎을 꿰맨 채 진통제를 먹어가며 지난달 잇단 대회를 치렀다.
무릎 통증은 남아있지만 눈앞엔 파리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도 뚜렷하다. 내년 5~6월 예정된 올림픽 예선에서 40명 중 단 10명만이 파리행 티켓을 얻는다. 김홍열은 “2028 LA 올림픽에서는 브레이킹이 다시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다. 내년 올림픽이 마지막일 수 있다”며 “브레이킹 종목 최고령 선수로 출전해 젊은 친구들과 아직 겨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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