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 28일 개봉

40일간 외부와 단절된 수능 출제본부 배경

주식 투자·학벌 카르텔·교수들의 권력 다툼 풍자

웃음 뒤 씁쓸한 뒷맛 남기는 블랙코미디

“좋은 어른에 관한 이야기하고 싶었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벌어지는 출제 현장에서의 소동을 다뤘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날아가는 비행기도 멈추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공정한 출제를 위해 출제자들을 40일간 가둬놓고 외부와 연락도 단절하기로도 유명하다. 외딴곳에서의 수능 출제 과정을 담은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재미가 끊이지 않지만 볼수록 씁쓸해지는 웃픈(웃긴데 슬픈) 영화다.

수능 40일 전, 젊은 교사 ‘맹보람’(이선빈)이 행정 착오로 수능 출제위원회 국어과에 동명이인 대신 이름을 올린다. 하지만 국어과 출제위원장인 교수 ‘문주열’(유재명)은 ‘출제자의 다양성’을 들며 보람을 교체하지 않는다. 막상 출제가 시작되자 ‘젊은 여성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번번이 막힌다. 문제 출제는 교사가 아닌 교수들의 몫인데, 교수들은 대부분 ‘S대’ 출신으로 출제위에서 빈번히 마주치며 해후하는 ‘고인물’이다.

공정한 수능에 대한 기대는 극 초반부터 무너진다. 주열은 국어 영역 비문학 지문 중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넣으려고 애쓴다. 주열이 출제위에 들어가기 전, 한 사교육 업체와 미리 약속하고는 해당 업체의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보람을 출제위에 남긴 것도 대학 후배인 평가원 직원 ‘기준수’(전석호)의 잘못을 덮어주기 위해서다. 주열은 준수에게 생색을 내며, 그 대가로 평가원의 연구 용역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한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의 주인공 ‘맹보람’(이선빈)은 행정 착오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이 되면서도 끝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문제 출제를 마친 출제위에 수능 문제 검토위원들이 등장한다. 국어과 검토위원장 ‘박경태’(김영민)는 하필 주열과 견원지간이다. 주열에게 물을 먹어 교수 임용이 늦어졌던 경태는 문제를 검토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검토위원장 탓에 문제 출제가 늦어지던 어느 날, 출제위에 비상이 걸린다. 주열과 관계를 맺은 사교육 업체가 만든 수능 모의고사 국어 영역 문제지에 칸트 지문이 등장한 것이다. 주열은 시험지 인쇄까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칸트 지문을 그냥 출제하자고 하지만, 보람은 공정한 시험을 위해서라면 문제를 바꿔야 한다고 맞선다.

수능 출제 과정을 그린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시종 웃음을 자아내지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출제위라는 작은 사회 안에 그려 넣은 블랙코미디다. 출제 과정 중 어려운 물리학 지문이 나오자 “이런 지문이 나오면 애들이 쫄아요”라던 보람의 의견은 무시되지만, 교수인 검토위원장 경태가 똑같은 말을 하면 받아들여진다. ‘미남 운동권 지도부’ 경태와 ‘사법고시 장수생’ 주열 간의 유치한 자존심 싸움도 벌어진다. 정치권에서 빈번한 지난한 말싸움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과 출제위원장인 ‘문주열’(유재명)은 부패하면서도 자존심이 센 인물이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를 연출한 이용재 감독은 “사회적인 문제를 (관객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코미디 영화를 만들게 됐다”며 “좋은 어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람은 한국 사회 병폐가 집약된 출제위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순수한 모습을 지켜나간다.

비밀에 싸인 수능 출제위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더해 교수들의 학벌 카르텔, 사교육 업체와의 유착, 권력 다툼 등 한국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비튼 풍자가 보는 맛을 더한다.

이미 후일담 형태로 공개된 수능 출제 현장의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이 감독은 “수능 출제 본부에 다녀온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주열이 주류 반입이 금지된 출제 장소에 한약 파우치에 양주를 담아 들여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영화 촬영도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배우와 제작진이 20여 일 합숙하며 진행됐다. 이 감독은 “코미디니까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다”며 “초콜릿에 비유하면 밀크초코보다는 다크초코에 가까운 맛이 있다”고 말했다. 28일 개봉. 99분. 12세 이상 관람가.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