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나도 흥행의 대가 한 푼 못받는 현실 바꿔야”
초기에 일괄로 받는 ‘매절 계약’ 지적
“과거엔 방송사 특약 통해 빈틈 매워
넷플릭스·디플 등 특약 거부, 제작비 상승도
70년간 글로벌 OTT 곳간 채워줄 판
창작자에 ‘비례적 보상’ 법에 명시를”

“해외 업계 사람들이 놀랍니다. K콘텐츠가 그렇게 유명한데도, 법이 없어서 흥행의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고 하면요.”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해영 작가가 말했다. 그는 tvN <나의 아저씨>(2018), JTBC <나의 해방일지>(2022),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2026) 등 인기작을 연이어 집필한 스타 작가다. 드라마 관련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던 그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창작자의 ‘매절 계약’ 문제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기자회견에도 나섰다. 박 작가는 방송작가협회 저작권위원장을 3년째 맡고 있다.
매절(買切) 계약은 창작자가 원고료와 저작권료 등을 초기에 일괄 받는 식의 계약이다. 계약 후 드라마, 책 등이 기대치보다 소위 ‘대박’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추가로 받을 수 없다. 흥행 실적에 따라 받는 영화계의 ‘러닝 개런티’가 없는 셈이다.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와 협업이 많은 드라마 작가로서 OTT가 창작자의 저작권을 매절 계약으로 일괄 넘겨받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그는 “처음엔 고사했지만 힘들더라도 이 일은 하는 게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매절 계약은 저작권법 100조 1항을 근거로 한다. 방송사나 OTT가 “특약이 없으면 영상저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권리는 양도받은 것으로 추정한다”는 게 골자다. 창작자들은 매절 계약의 빈틈을 특약을 통해 메울 수 있었다. 박 작가는 “1991년에는 방송사들과 저작권 신탁단체인 방송작가협회가 특약을 맺어서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당시 작가들이 한 달간 집필 거부까지 하면서 이뤄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방송사들이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면 편성표를 비울 수밖에 없었기에 작가들의 집단행동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특약을 통해 방송사가 드라마를 재방송하거나 해외에 판매할 때 창작자들은 추가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콘텐츠 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글로벌 OTT는 창작자들과의 특약을 거부하고 있다. 박 작가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들은 창작자들의 고유한 권리인 저작권을 포기하도록 강요해왔다”며 “방영 기회를 잡기 힘든 작가들이 이 요구를 거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 저작물은 공표 후 70년간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70년간 글로벌 OTT의 곳간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OTT는 전 세계에서 콘텐츠를 공급받기에 작가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어렵다.
‘매절 계약’은 창작자들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제작비 상승으로 제작사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OTT가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박 작가는 “글로벌 OTT는 유명 작가에게 특약을 맺는 대신 계약 금액을 올려준다”며 “이게 제작비 상승으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OTT에 드라마를 공급하는 제작사 또한 성장하지 못한다”며 “제작사도 작품이 성공하더라도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없다. 드라마의 기대수익이 줄어들면서 전보다 드라마를 많이 만들지 못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광고수익 악화로 방송사의 자금력이 줄어드는 반면, 거대 글로벌 OTT가 영향력을 키워가면서 드라마 제작이 OTT에 종속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연출자, 연기자 등은 2024년 ‘K-콘텐츠의 정당한 보상을 위한 창작자 연대’를 꾸리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저작권이 방송사·OTT에 양도된 후에도 창작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정당보상청구권)를 명시했다. 흥행이 잘됐을 때 저작권료를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박 작가는 “그 한 줄만 들어가도 창작자들이 OTT와 저작권 관련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회는 2019년 ‘유럽연합(EU) 디지털 단일 시장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지침’을 제정해 창작자에 대한 ‘비례적인 보상의 원칙’을 명시했다. EU 회원국들은 이 지침에 따른 법과 규정을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미국작가조합이 2023년 파업을 벌여 영화·TV 제작자연맹(AMPTP)과 OTT 시청 시간 등에 따른 ‘재상영 분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박 작가는 “유명 작가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행동한다는 오해도 받는다”며 “매절 계약 형태가 아니면 초기에 계약금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에게도 지금보다 기회가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작가협회와 연대를 계속할 것”이라며 “힘 있는 작가들이 뭉쳐서 이와 관련된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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