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통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다치지 말고, 싸우지 맙시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용산청소년센터 체육관. 양옆으로 길게 줄지어 선 운동복 차림의 여성 13명을 앞에 두고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말했다. 선수들 사이에 천 소장의 말을 옮기는 중국어와 영어 몇 마디가 바삐 오갔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가 모집한 ‘다문화 어머니 농구단’은 이렇게 첫발을 뗐다.
이들은 2012년부터 연구소가 운영하던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에서 출발했다. 어린이 농구단은 나이지리아계 혼혈 모델 한현민을 비롯한 다문화 가정 어린이 300여 명이 거쳐 갔다. 지난 6월 어린이 농구단 행사 도중 어머니들의 농구 시합이 즉석에서 열렸는데, 경기를 뛴 어머니들이 땀 흘리는 재미를 느끼면서 농구단 창설 논의를 시작했다.
어린이 농구단에서 알고 지내던 어머니들이 주축이 돼 지난달 11~22일 농구단 모집에 응한 다른 어머니들이 더해졌다. 중국, 대만, 일본, 멕시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하다 한국에 온 30·40대 20여명이 농구단에 모였다.
이날 본격적인 훈련은 없었지만, 농구공을 손에 쥔 이들은 골대를 바라보며 둥글게 모여 슛을 던지기 시작했다. 몸이 풀리자 몇몇은 레이업슛까지 시도하며 실력을 뽐냈다.
뉴질랜드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2년 전 한국에 왔다는 중국계 송비비씨(41)는 “중학교 때 농구를 배운 적이 있고 평소 농구를 좋아했다”며 “여럿이 함께 운동하게 돼 활력이 생긴다. 나중에 시합에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장인 송씨는 선수들을 두 줄로 세워 간단한 패스 훈련까지 지도했다.
중국에서 한국에 온 지 22년이 됐다는 노해옥씨(49)는 인천 부평에서 용산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찾아와 첫 모임에 합류했다. 노씨는 “큰딸이 중학교 3학년생인데 진로·진학이 고민돼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할만한 모임을 찾고 있었다”며 “일을 오래 하느라 건강이 좋지 못하다. 농구를 배워 본 적은 없지만 건강을 찾고 기분 전환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사격 국가대표 출신인 김유연씨(41)도 트레이너 겸 선수로 첫 모임을 함께 했다. 농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김씨는 “팀을 이뤄 운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구도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두렵다”며 “천 소장님이 ‘한국인이 없는 다문화 모임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두 시간 가까이 공을 주고받고 땀을 흘리면서 어색함을 덜어냈다. 농구단이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다문화 가정과 그에 대한 외부 인식을 바꾸는 계기로 삼겠다는 다짐도 했다. 천 소장은 “어머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 다문화 가정도 마찬가지”라며 “어머니들을 ‘누구누구 엄마’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직접 부르면서 모임을 하자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장소를 제공한 용산청소년센터 심묘탁 센터장은 “다문화 가정 어머니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애환이 있을텐데 모임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얻을 것”이라며 “어머니들의 행복이 곧 자녀들이 어긋나지 않게 성장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농구단은 앞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손발을 맞춰 갈 계획이다. 시합에 나가 우승을 하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유니폼도 맞추고 정식 팀 이름도 정한 뒤 실력이 무르익으면 다른 팀과 농구 시합도 할 계획이다.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 있다. 천 소장은 “모두가 이주민, 다문화의 중요성은 알지만 한국이 이들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느리다”며 “결국 누군가가 나서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농구단을 운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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