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까지 약 1년 3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가 정치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한 것을 기점으로, 국회의 여야 의원 60여명은 지난 16일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출범해 현행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지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과 지지자들이 극단 대립하는 현 정치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는 증거다.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정치개혁의 수단으로 거론되는 여러 제도들은 이미 시행됐거나 논의됐던 것이다. 정치개혁 필요성이 처음 논의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때문에 정치개혁이 현실화될 수 있겠냐는 냉소 섞인 반응도 함께 나오고 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정치개혁의 대상이 될 국회의원들이 차기 총선 출마를 앞두고 자신의 재선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는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공직선거법 개정 시도와 그 이후 벌어진 난맥상은 그 냉소를 키운다.
2018년 10월2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20대 국회 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처음 열렸다. 정개특위는 그해 7월 구성됐지만 위원 정수를 놓고 여야가 대치한 끝에 90일 넘게 지나서야 첫 회의를 열었다. 그해 12월에 선거제도 개혁방안 3가지가 제시됐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각 지역구에서 의원 1명을 선출하는 현행 소선거구제에 전국을 지역별로 여러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마다 정당 명부를 마련해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형태는 어느 안에서든 비슷했다. 비례대표 의석도 47석에서 75~110석으로 늘리고,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가 비슷하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21대 총선 전 선거법 개정 시한인 2019년이 되면서 선거법을 둘러싼 갈등은 첨예해졌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여야 4당(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과 함께 공직선거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태우는 과정에서 반발했다. 바른미래당은 선거법 패스트트랙에 대한 입장이 당내에서 갈렸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평화당이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리자는 취지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늘리자고 했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300석에서 늘릴 수 없다고 반발했다.
패스트트랙 대상이 됐던 선거법은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 의원 수를 253명에서 225명으로, 비례대표 의원 수를 47명에서 75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각 권역별 지역구 의원 후보 낙선자 중 득표율이 높았던 후보를 당선시키는 석패율제 등이 담겨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21대 총선에서는 이런 변화는 없어졌거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현역 의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다.
21대 총선의 ‘룰’이 됐던 선거법에는 결국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는 빠졌다. 국회의원 의석수에도 변화는 없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만 적용하는 방식으로 축소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마저도 작동하지 못했다. 한국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민주당도 맞불 성격의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거대 양당은 정당 지지율에 따른 의석수 중 대다수가 지역구 의석수에 해당할 것이었으므로 비례 의석수는 상대적으로 적게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양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별개의 위성정당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실질적인 변화가 없던 데는 의석수를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양당, 비례대표제 변화와 석패율제로 소수 정당의 국회 입성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잃게 될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20대 총선에서 호남을 싹쓸이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여럿 차지했던 ‘국민의당 바람’이 재현되면, 선거를 앞두고 양당 체제로 재편된 의원들 개인도, 양당도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21대 총선은 거대 양당과 그 위성 정당이 국회 300석 중 283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선거제 개편 후 수혜를 기대했던 정의당은 20대 총선과 같은 의석수(6석)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선거의 룰을 적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현역 의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20대 국회의 선거법 개정 시도는 예견된 결말을 맞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3지대’ 국민의당의 20대 총선 바람, 이후 탄핵 정국을 계기로 더 다양해졌던 국회의 구성은 21대 국회 들어 단순해졌다. 양당이 아닌 다양한 소수 정당의 원내 입성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국회의원 정수 확대가 꼽히지만, 의원 정수 확대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극한 대립을 정치 개혁으로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은 국회 안팎에서 모두 제기되지만, 22대 총선 역시 선거의 룰을 정하는 의원들이 극한 대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 안팎에서는 정치 개혁의 동력을 ‘여론’으로 꼽는다. 민주당 한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를 개편할 때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선거제 개편에 대한 여론의 요구가 구체화된다면 국회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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