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물음과 ‘그리움’ 동기로
10년 전부터 그림···작품 131점 추려서
평택 엠엠아트센터서 ‘제4의 벽’ 전시회
관람객, 작업장면 실시간 조망하는 구조
“연극처럼 보며 상상하는 과정 느끼길”
“10년 전부터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어요. 중간중간 영화나 드라마를 가끔 한 것이죠.”
화가보다는 명배우로 널리 알려진 박신양씨(55)는 “영화·드라마를 찍는 동안에도 그림을 그렸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저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하지 않았다”며 “다만 그림을 그린다고 30년 동안 한 연기를 부차적으로 생각하진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중들의 인식과 달리 영화·드라마가 아닌 그림을 자신의 주된 업으로 여기고 있었다. 박씨가 출연한 마지막 작품은 2019년 방영된 KBS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이었다.
대중에 눈에 띄지 않는 시간 동안 그는 주로 그림에 몰두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로 10년간 그린 그림 400여점 중 131점을 추려 경기 평택시 엠엠아트센터에서 전시회 <제4의 벽>을 지난달 19일부터 개최하고 있다. 철학자 김동훈씨와 공저한 같은 이름의 책도 출간했다.
지난달 29일 찾은 전시장의 구조는 독특했다. 천장이 높은 1층에서 박씨는 직접 목재를 잘라 캔버스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등 작업을 하고 있었고, 관람객들은 작업실 위를 액자처럼 둘러싼 데크에 올라 박씨의 실시간 작업 장면을 내려다보게 돼 있었다. 관람객이 작업을 보는 것은 “일종의 연극을 보는 것”이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전시회명인 ‘제4의 벽’은 관객과 연극 무대를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연극 용어다. 전시장에서는 뻥 뚫린 작업실 천장이 제4의 벽 역할을 하고 있다. 박씨는 “사람들은 ‘제4의 벽’을 통해 상상에 빠져들게 돼 영화와 연극에 몰입한다”며 “많은 사람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상상할 기회를 뺏기는 것 같다. 관객들이 내 작업을 연극처럼 보면서 ‘우리는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상상하는가’를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영화·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을 오랜 시간 들여 연구하는 배우로 유명했다.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지만 ‘캐릭터가 아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도 커졌다고 한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나눌 수 있는 말은 아니다”라며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 온 시간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움’은 박씨가 그림을 그리는 또 다른 동기다. 박씨는 “내가 왜 그림을 그리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움’이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움의 직접적인 대상은 25년 전 러시아 유학 당시 만났던 친구와 스승이지만,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속했던 알 수 없는 근원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박씨는 2020년 갑상샘항진증을 앓아 수술대에 올랐던 일도 책을 내며 처음 알렸다. 그는 “이를 계기로 오히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바에 대해 알고 싶어 안동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서강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일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미술을 하는 연예인에 대한 세간의 편견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작업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박신양이) 진짜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닐 거라’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왜 그림을 그리는지 설명하는 게 힘들지만, 이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책도 내고 전시회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관객에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이는 전시 형식도 그의 그림이 단순히 취미 수준에 머무르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시장에서 직접 작업을 하고, 그림을 판매하지 않는 지금 형태의 전시를 전국을 돌며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4월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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