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제공 의혹에 대해 브라질 연방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미국 정부가 이 비리 스캔들을 조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의 국영 에너지 기업이자 브라질의 자존심이다. 한때는 브라질뿐 아니라 남반구 최대 규모의 에너지 회사, 라틴아메리카 최대 기업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시가총액이 2365억 달러(약 259조원), 2012년엔 자산규모가 1373억 달러(약 150조원)에 이르렀다. 브라질 경제의 저성장 속에 그 위세는 한풀 꺾였지만, 페트로브라스의 브라질 내 영향력까지 줄지는 않았다. 페트로브라스는 여전히 브라질의 예술·문화행사의 주요 스폰서다. ‘브라질 긴수염고래 프로젝트’ 같은 환경보호운동의 최대 스폰서이기도 하다.
지난해(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 세계적 도청 사실이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됐을 때,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발끈했다. NSA가 페트로브라스를 도청했다는 사실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호세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미국의 전방위 도청을 앞장서 비난한 지도자였다. 브라질이 신흥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할 때 크게 기여했던 페트로브라스를 호세프가 앞장서 보호한 것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페트로브라스 본부 건물의 모습. | 위키백과 |
그러나 최근 페트로브라스가 호세프 얼굴에 먹칠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스캔들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페트로브라스 임원이 건설 계약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업체들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고, 이 돈을 집권당인 노동자당(PT)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뇌물로 썼다는 보도가 나왔다. 브라질 연방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미국 정부가 이 비리 스캔들을 조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스캔들을 보도한 것은 9월 7일 발간된 주간지 <베자>였다. <베자>는 정유 기술자 출신으로 2004~2012년 페트로브라스 임원으로 재직했던 파울루 호베르투 코스타가 건설업자들로부터 수백억 달러를 빼돌려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연방검찰이 이미 코스타를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는 내용도 있었다. 코스타는 브라질의 성공한 석유기술자였다. 스위스와 케이먼제도 은행에는 2500만 달러의 자산이 예금돼 있었고, 은퇴 뒤 리우데자네이루에 컨설팅 업체까지 설립했다. 페트로브라스에서 35년 업적을 인정받은 코스타는 최고경영자(CEO)인 마리아 다스 그라사스 포스테르로부터 “친애하는 동료이자,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찬사를 들었던 인물이다. 스캔들로 코스타의 명성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수백억 달러 정치인에게 뇌물로 제공
스캔들의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코스타가 자신이 뇌물을 준 정치인 30여명을 지목해 진술한 것이다. 지난 8월 비행기 사고로 숨진 브라질사회당(PSB) 전 대선후보 에두아르두 캄푸스를 비롯해 연방상원 의장, 연방하원 의장, 집권 노동자당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페트로브라스와 언급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뇌물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10월 대선을 앞두고 있던 호세프에게 불똥이 튀었다. 호세프의 노동자당이 스캔들에 연루됐을 뿐 아니라, 국영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경영진을 호세프가 지명했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였던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의 아에시우 네베스는 ‘호세프 때리기’를 시작했다. 2%대의 저성장과 6%가 넘는 물가상승률, 월드컵에 무리하게 투입된 정부 예산 때문에 호세프의 지지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던 차였다. 10월 5일 대선 1차투표 이후 호세프-네베스 간 결선투표가 확정되자 공세는 더 거세졌다. 네베스는 호세프를 TV 토론에서 만나면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에 대해 언급했다. “비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던 호세프는 급기야 10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페트로브라스에서 제출한 영수증을 보고 공금 횡령이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벌어진 설문조사에서 네베스의 지지율이 호세프를 앞질렀던 것도 이때였다.
막판 지지층 결집 덕에 호세프는 결선투표에서 네베스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스캔들은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연루된 것으로 나왔지만, 핵심 인물로 지목된 코스타 정도를 제외하고는 수사 대상에 오른 정치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와중에 스캔들은 점차 ‘국제 규모’로 커지고 있다. 11월 13일 폴랴지상파울루를 비롯한 브라질 언론들은 연방 감사원이 네덜란드 해양설비 업체 SBM 오프쇼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업체가 페트로브라스 간부 6명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를 감사원이 포착했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11월 9일에는 파이낸셜타임스가 “미국 국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페트로브라스 비리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페트로브라스 임직원, 중개인, 도급업자들이 장부를 조작하고 뇌물을 제공하는 등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했는지 조사한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조사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브라질 정부와 페트로브라스는 조사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호세프가 직접 나서 미국으로부터 보호한 페트로브라스가 미국 정부의 수사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가면을 쓴 브라질의 시위자가 지난 6월 22일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집회에서 ‘부패 정치인을 체포하라’고 적힌 포스터를 몸에 두르고 있다. | 브라질리아/AP연합뉴스 |
국제문제로 비화 미국의 수사선상에
페트로브라스는 이미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브라질의 국가적 자존심이던 페트로브라스의 이미지가 스캔들로 타격을 받았다”고 평했다. 페트로브라스는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우리가 피해자”라며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비리와 관련된 언론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호세프가 당장 타격을 받을 것같진 않다. 대선 직후 호세프가 비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시위가 벌어지긴 했지만, 호세프는 착착 2기 내각 구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호세프 정부와 브라질 민주주의는 또다시 비리에 얼룩졌다는 오명을 안게 됐다. 전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도 2005년 대규모 비리 스캔들에 휘말렸다. 노동자당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멘살라웅’ 스캔들이었다. 당시 의원 40명이 기소됐으며, 연방대법원은 2012년 이 중 24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브라질 사법 전문가인 매튜 테일러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 교수는 “이번 스캔들은 브라질 민주주의가 좀먹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라며 “(비리 스캔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주력 국영기업뿐 아니라 금융 정책가들과 의원들 간 부패와 유착도 (수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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