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아프간에서 전쟁을 끝내길 원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 오바마의 공언처럼 ‘아프간 내 완전 철군’을 섣불리 할 수는 없다.
‘오바마의 전쟁’이 시작됐다.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겠다며 8월 8일 이라크 공습을 시작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처음엔 애써 시리아를 공격하지 않으려는 듯했지만, 준비 끝에 9월 23일 결국 시리아 공습도 감행했다.
그간 오바마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전 정권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어리석다”고 표현해 왔다. 적잖은 돈과 병력을 전쟁으로 소모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재임 내내 ‘부시의 전쟁’에서 손을 뗄 ‘출구전략’을 마련해 왔다. 2011년에는 이라크에서 완전 철군했으며, 올해 말에는 아프간에서도 철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프간 내 문제는 아프간 정부와 보안군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아프간 보안군은 국내 치안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탈레반 소탕은커녕 이따금씩 벌어지는 탈레반의 공격도 막지 못하는 아프간 정부는 국내 치안을 담당할 최소한의 미군 병력이라도 남기를 바라고 있다. 때문에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아프간 군을 훈련할 미군 병력 주둔을 골자로 한 상호 안보협정(BSA)을 올해 말까지 체결해야 했다.
|
탈레반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교통경찰본부에서 정부 보안군이 2013년 1월 21일 건물 옥상을 통해 테러 진압작전을 펼치고 있다. 카불/AFP연합뉴스 |
대선 불복 중재, 안보협정 체결 천명
그러나 협정 체결은 쉽지 않았다. 아프간 전쟁 이후 첫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는 협정 체결을 거부했다. 지난 6월 선거로 뽑힐 후임 대통령이 서명을 해야 했지만, 대선 최종투표 결과를 둘러싸고 대선 불복 사태가 벌어졌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까지 나서 중재한 끝에 두 대선 후보는 대통령-최고 행정관(총리)직을 나눠 갖기로 했다. 미국은 조속한 안보협정 타결을 천명했다.
지난 4월, 아프간은 대선 1차투표를 치렀다. 여성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만큼 대선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이래, 아프간에서의 첫 번째 민주적 정권교체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첫 대통령이던 카르자이는 2001년 12월 본 조약에서 ‘지명된’ 과도정부의 지도자였다. 두 번의 선거에서 정권교체 없이 카르자이는 아프간의 수장직을 이어갔다.
사실 아프간 국민들보다 더 정권교체를 기대한 것은 미국이었다. 아프간과의 안보협정을 맺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협정을 체결해야 아프간 보안군을 훈련시킬 병력 1만여명만 남겨두고 현지에서 철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상 파트너인 카르자이가 2012년부터 시작된 안보협정 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일부 조항에서 이견을 보이며 서명 시한을 계속 뒤로 미뤘다. 아프간 전쟁 때부터 ‘친미성향 인사’로 분류된 카르자이의 태도가 임기 말 바뀐 것이다.
카르자이의 태도가 바뀐 이유로 ‘미국의 꼭두각시’로 굳어진 그의 이미지가 거론됐다. 명성이 깎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미군 주둔을 승인함으로써 탈레반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은 이에 “협상이 체결되지 않으면 병력을 아프간에서 모두 철군할 수 있다”고 맞섰다. 카르자이에겐 국내 치안상황을 유지하려면 미군 주둔이 필요했다. 빨리 철군문제를 매듭지으려던 미국은 강수를 던졌지만, 카르자이는 대선이 시작된 4월까지 협상 체결을 미뤘다.
미국의 바람이 통했을까. 대선 1차투표 결과 상위 두 후보로 압둘라 압둘라 전 외교장관,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이 뽑혔다. 둘은 출신부터 성향까지 확연히 달랐지만, 미국과의 안보협정 체결에 긍정적이라는 점은 같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두 후보 중 어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생각보다 길어진 안보협정 타결을 이룰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미국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 둘 중 아무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6월 치러진 결선투표 결과 발표를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대선 잠정 결과가 나왔을 때, 압둘라가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1차투표에서 100만표 이상 가니에게 앞섰던 압둘라가 결선투표에서 가니에게 100만표 뒤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
아프간 대선 두 후보인 압둘라 압둘라 전 외교장관(왼쪽)과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이 9월 21일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서 각자 권력분점 협정안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카불/AFP연합뉴스 |
|
압둘라 압둘라 전 외교장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왼쪽부터)이 7월 12일 수도 카불에서 아프간 대선 전면 재검표에 합의한 뒤 기자회견장에 서 있다. 카불/AP연합뉴스 |
탈레반 여전히 건재, 멀고 먼 아프간 평화
압둘라는 6월 22일, 선거관리위원회와 가니 후보 측의 대화 녹취를 공개했다. 선관위 사무총장과 가니 후보 측 인사가 ‘암호’를 사용해 투표함을 바꿔치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총장이 논란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압둘라는 전면 재검표를 요구했다. 다수 파슈툰족 출신인 가니와 소수민족인 타지크계 압둘라의 갈등은 자칫 아프간에서 오랜 세월 벌어진 민족간 갈등으로 비화될 우려를 낳았다. 압둘라는 대부분 파슈툰이었던 탈레반과 싸우던 ‘북부동맹’ 출신 전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가니를 지지한 파슈툰족과 압둘라를 지지한 타지크족은 서로 대선 불복과 승복을 외치며 시위했다.
그런 와중에 7월 12일, 극적으로 두 후보가 전면 재검표에 합의해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케리가 수도 카불을 직접 방문해 두 후보를 설득한 끝에 두 후보는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압둘라 측은 재검표 진행 중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무효표를 정하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더 정밀한 조사를 요구했다. 그렇게 재검표도 미뤄지고 있었다.
결국 다시 미국이 나선 뒤에야 상황은 새 전기를 맞았다. 두 후보가 이번에는 극적인 권력 분점에 합의했다. 가니가 대통령, 압둘라가 최고 행정관을 맡기로 했다. 득표수를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첫 번째 민주적 정권교체는 다소 빛이 바랬다.
안보협정은 곧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권력 분점과 동시에 케리를 포함한 미 당국자들이 조속한 협정 체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케리는 권력 분점 합의 직후 “9월 중으로 조약을 체결하자”며 재촉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아프간에서 전쟁을 끝내길 원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 오바마의 공언처럼 ‘아프간 내 완전 철군’을 섣불리 할 수는 없다. 이라크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쟁을 마치고 미국의 중재 아래 이라크에는 분파간 권력을 분배한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시아파를 적극 중용한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는 이라크의 정국 불안과 IS 준동의 주범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한 아프간의 평화도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과 미군이 아직 철군하지 않은 이 시점에도 탈레반은 수차례 폭탄 공격으로 민간인과 해외 파병 병력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