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가 될 때까지 전자제품 판매점 앞에 수백명이 줄을 서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번호표를 나눠주며 ‘고객’들의 질서 유지를 맡는다. 베네수엘라 최대 전자제품 판매체인인 ‘다카’ 매장 앞에서 9일 벌어진 일이다. 카라카스 시내 주거지역 베요몬테의 다카 지점을 찾은 한 시민은 AP통신에 “내일이면 또 가격이 오를 지 몰라 오늘 이 기회를 잡으려 나왔다”고 말했다.
전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발표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마두로는 국영방송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다카 매장에서 9일 ‘공정가격’으로 전자제품을 판매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다카가 전자 제품을 사재기해 가격을 올린 사실을 적발했다. 당국은 다카가 7000볼리바르(약 118만원)짜리 에어컨을 3만6000볼리바르에 팔았다고 밝혔다. 당국은 다카의 가격 횡포를 바로잡는다며, 5개 주요 매장의 관리자들과 직원 500명을 체포했다. 또 군대를 보내 다카의 가게들을 점거하고 값을 낮추도록 했다. 그 결과 9일 물건을 사려는 이들이 몰려들었고, 중부 도시 발렌시아에서는 다카 매장에서 약탈전까지 벌어졌다.
마두로는 직접 방송에서 다카 매장의 세탁기 가격을 거론하며 이 회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물가 잡기에 실패한 무능한 마두로 정부가 다카 측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돼 국제적으로 외톨이가 된 베네수엘라는 물가상승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물가는 1년 새 54% 이상 올랐다. 우유와 화장지 등 기초 생필품이 모자라 시민들은 아우성이다. 암시장의 볼리바르-달러 환율은 공식 환율보다 7배쯤 높다.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밤새 줄지어선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포스트 차베스’의 현실을 드러내준다. 우고 차베스 전대통령이 숨진 뒤 선거에서 신승을 거두고 집권한 마두로는 경제 위기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지난 7월 현재 정부가 대외 부채를 갚는데 쓴 돈이 전년 대비 597% 늘었다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모자라는 달러가 더 부족해졌다”고 보도했다. 물가상승은 다음달 8일로 다가온 베네수엘라 총선의 최대 이슈다. 앞서 당국은 생필품 부족을 취재하던 미국 마이애미헤럴드 기자를 이틀간 억류하기도 했다. 야당 지도자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마두로의 경제 실정을 맹공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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