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주한 에콰도르 대사 호소


검은 기름이 뒤섞인 흙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굳어 있다. 기름은 흐르는 강물 위에도 점점이 떠다닌다. 한 여자아이의 오른쪽 눈에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에콰도르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닥친 일이다. 이곳에서 석유를 뽑아 올리던 다국적기업이 버린 원유와 폐기물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환경 파괴와 주민들의 고통은 한국 사람들에겐 생소하기만 하다.

니콜라스 트루히요 주한 에콰도르 대사(47·사진)가 아마존 지역의 환경 파괴 실상을 한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섰다. 13일 서울 종로구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만난 트루히요는 “먼 나라 일이라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주민 피해를 알리고 한국인들도 연대에 동참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회사 셰브론과 아마존 환경파괴 배상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에콰도르 정부는 각국에 나가 있는 대사관과 국제기구, 환경단체들을 통해 연대투쟁을 조직하려 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셰브런이 2001년 인수한 미 텍사코의 아마존 시추작업이었다. 텍사코는 에콰도르에서 1964년부터 1992년까지 채굴을 하며 원유 38만배럴을 유출하고, 폐기물에 오염된 물 681억ℓ를 버렸다고 에콰도르 정부는 주장했다. 트루히요는 “이 지역 4000㎢가 오염됐고, 피해자가 3만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피부병부터 암까지 온갖 질병을 호소하고 있다. 기형아가 태어나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1993년 질병에 걸릴 위험이 늘었고 재산 피해가 있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렇게 셰브론과 에콰도르의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에콰도르 대법원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셰브론에 95억달러(약 10조2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셰브론은 오히려 에콰도르 정부를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 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중재재판소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에콰도르에 유리하지만은 않다. 다국적기업의 활동에 유리한 쪽으로 세계 무역시스템이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중재재판소는 에콰도르 정부에 “개인들과 기업 간 소송에 간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에콰도르 정부가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호소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지난 7일 유네스코 총회 연설에서 아마존의 실상을 언급했다. 트루히요 대사는 “지난달부터 전 세계 에콰도르인들이 아마존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유명인사들도 연대 의사를 전해왔다. 미국 가수 셰어는 셰브론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트루히요 대사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브래드 피트, 앤젤리나 졸리 등 유명 배우들도 연대 의사를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에콰도르 대사관은 한국에서도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연대위원회(KSC)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트루히요 대사는 “작은 뜻이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