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산업화로 텅 빈 도시를 문화로 채운다. 문화로 ‘이야기’를 만들고 정체성을 살리며 지속가능한 도시의 동력으로 삼는 재생 전략은 이미 큰 흐름이다. 영국의 찰스 랜들리는 <창조도시>에서,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론>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말한다.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 역시 <창조하는 도시>에서 전통과 문화로 새 삶을 꾸린 도시를 전하고 있다.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는 유네스코가 2009년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가장 잘 이뤄진 창조도시’로 선정한 곳이다. 연 700만명이 자연을 즐기러 오는 지역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경관조례’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400년 넘게 지진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에도시대부터 쌓인 전통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섬유업체들이 모여 단단한 산업기반이 있다. 견직물과 봉제뿐 아니라 금속·인쇄공업도 발달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_ 위키피디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완성된 가나자와의 문화가 쉽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가 관광자원화 취지로 전통건물 보존지역을 지정하려 하자 주민들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주거환경이 나빠진다며 강하게 저항했고, 관광객과 주민들의 갈등으로 소란을 빚은 경우도 많았다. 토박이 예술가들은 관광산업이 가나자와 문화의 진면목을 없앤다며 맞서기도 했다. 지자체가 지역 문화단체들을 설득해 오랜 시간 주민과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이 가능했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들이 문화도시를 꿈꾸지만 외부에서 주도하는 재개발이나 겉치레 성과에 치중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 가나자와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나가사키(長崎)는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나가사키도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미쓰비시 자본에 장악됐고, 중공업과 조선업 의존도가 높아졌다. 결국 중공업과 조선업 성장이 멈추자 도시 전체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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