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은 윤석열 정부의 군과 국방부, 국가보훈부에 대해 “정쟁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빈 기자

해군참모총장 출신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66)은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채모 해병대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등 윤석열 정부에서 각종 군 관련 논란이 잇달아 일어나는 데 대해 “국방부와 군이 정치적 문제에 매몰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이념전쟁’ 기조를 비판하며 “이념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지시는 군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경직된 군대는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 전 처장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문재인 모가지’ 등 문제가 된 발언을 두고 “장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지가 없다. 장관 자질이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보훈처장으로 홍범도 장군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봉환하기도 했던 황 전 처장은 “보훈의 진정한 가치는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국가보훈부에 대해 “정쟁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황 전 처장은 2011년 해군 작전사령관으로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해적에게 납치당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작전을 지휘했다. 2013~2015년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신원식 장관 후보자의 과거 언행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장관 후보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보나.

“자질이 없다. 전직 대통령을 향해 ‘모가지를 딴다’고 한 건 인신공격이다. 장관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지가 없다. 중대장 시절 사망사고 은폐 의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부하의 생명보다 본인의 출세가 우선인 장관을 누가 믿고 따르겠나.”

- 박정훈 해병대 대령이 상부의 채모 상병 수사 관련 상부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게 항명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시나.

“애초에 박 대령이 주도한 수사 결과가 이상했다면 해병대 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걸러지고 수정됐을 것이다. 박 대령이 지시와 달리 경찰 이첩을 강행하기 전에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특검 등을 통해 가려내야 한다. (상부의) 부당한 지시는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 올바른 보고가 상부에서 받아들여지리란 신뢰가 없으면 누가 제대로 된 내용을 보고하겠나. 국가 안보뿐 아니라 국민적 신뢰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

“정당한 절차나 국민적 합의도 없이, 몇 사람들이 짧은 시간이 역사를 단절시켰다. 기존의 질서를 순식간에 단절시켰다는 점에서 쿠데타와 마찬가지다. 역사의 심판을 받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독립운동은 존중받아야 하니 홍범도 장군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는데, 동상을 새로 만들면 되지 왜 옮기겠다는 것인가. 독립기념관에는 김좌진 장군, 윤봉길·안중근 의사의 전신상이 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전신상과) 나란히 두는 것도 맞지 않다.”

-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정쟁화하려는 시도가 왜 있다고 보는가.

“정쟁을 통해서 극우 보수 세력을 규합해 이득을 보려는 몇몇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홍범도 장군이 1962년 정부로부터 훈장(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을 때도 그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2021년 보훈처장으로 홍범도 장군 유해를 국내에 봉환했을 때 환영을 받았는데, 육군 일부 기득권은 폄하하더라.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해서 무시했는데, 그들이 정권과 결탁해 추진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 최근 군에서 잇단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국방부와 군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고유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에 매몰된 것 같다. 육사 흉상 철거 논란이나 채 상병 수사 과정 외압 의혹에서 보이는 이념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지시는 군의 자율성을 제한하게 된다. 경직된 군대가 싸워서 이긴 적이 없다. 생각이 경직되면 국가 안보도 위험해 진다. 정치권이 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군이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없다.”

- 최근 이념적 발언을 이어가는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보훈부나 국방부는 정쟁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면 안 되는데 정쟁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보훈의 진정한 가치는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고 타협해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힘을 합칠 수 있다. 그게 보훈의 진정한 가치다.”

- 윤석열 정부가 미국·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기조를 명확히 하고 있는데 우려되는 점이 있나.

“외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국익이라면, 안보에서는 자강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위험부담을 누군가 대신 져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안일한 사고다. 과거 일본 초계기가 우리 군 구축함 상공을 위협 비행한 적이 있다. 일본과의 군사 협력은 독도나 영유권 문제 등 이해관계가 충돌되면 하루 아침에 뒤바뀔 수밖에 없다. 일본과의 군사협력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있을까.”

- 윤석열 정부가 안보정책 기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정부는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를 이야기 하는데, 압도적인 힘이 오히려 상대의 강한 대응을 야기할 수 있다. 미국이 9·11 테러를 압도적인 힘이 없어서 당한 게 아니다. 강 대강 대치가 계속될 때 커질 수 있는 위협 요소를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정세 속에서도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는 안보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