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예술 크리에이터 에이전시 ‘에이블라인드’의 양드림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숭실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제가 장애인 작가들을 도왔을 때보다 (전시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울림이 있어요.”

시각장애인 예술가 에이전시 ‘에이블라인드’를 운영하는 양드림 대표(26)는 일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만난 양 대표는 “제가 장애인들을 돕는다는 것은 제가 죽으면 끝날 일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제가 없더라도 영향력이 미치는 일”이라며 “예술 사업을 통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도움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대학교 4학년 때인 2021년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창업을 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지만 아이템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 방송에서 한 사업가가 ‘1년 동안 사업 아이템을 세 번 바꿨다’는 말을 듣고 창업 수업을 듣기로 마음먹었다”며 “마침 창업 수업 교수님도 ‘아이템보다 창업가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셔서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목사였던 아버지가 노숙인 아주머니, 성 소수자 청년을 집에 데려와 숙식을 제공했던 경험, 창업 전 ‘배리어프리영화제’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알게 된 경험은 공익적인 분야로 창업의 방향을 정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림 실력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며 “발달장애인 예술가 에이전시는 많았지만 시각장애인 예술가 에이전시는 없어 그렇게 사업 분야를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사업가의 첫발은 쉽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시각장애인 작가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채 전시회를 기획하고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해 첫 전시회 때 장소를 무료로 구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었다”라며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일들을 해나가는 법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 예술 크리에이터 에이전시 ‘에이블라인드’‘의 양드림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숭실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양 대표는 모두가 만족스럽게 지내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불편을 이해하면서 공감하는 일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가 장애인·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임을 열고 아카펠라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장애 인식 개선 활동에까지 영역을 넓힌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비장애인이 평소 ‘나와 다를 것’이라 생각한 장애인들과 재밌게 놀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장애인을 돕는 일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3년 차를 맞은 양 대표는 어느덧 20명 넘는 시각장애인 예술가와 계약을 했다. 또 500여명이 찾은 두번째 전시회에 이어 오는 11월 서울 구로구 구캔갤러리에서 세번째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양 대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는 전시회를 거치며 2만여 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가로서 여전히 고민이 많다. 그는 “창업 초반 정부나 지자체, 기업 등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장애인 관련 활동이 기업의 도움만으로 성장하는 것은 싫다”며 “시각장애인 예술가들이 장애 인식 개선 활동 강사로도 일할 수 있는 길, 그들의 작품을 캐릭터화·브랜드화해 외부와 협력하고 판매하는 등 다른 수입원을 만드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그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서 “누군가를 도와주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