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원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강윤중 기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원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강윤중 기자

25일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66)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63) 등 삼성그룹 수뇌부에 실형을 선고하자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 재벌 총수에 대한 첫 실형 판결은 의미있다”면서도 “삼성의 잘못과 국민들의 법 감정에 비해서는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 부회장의 선고 후 논평을 내고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 비하면 아쉽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고 실형을 내렸다는 것은 의미있다”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부정하게 결탁해 사익을 취하고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한 범죄에 법원이 단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실련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되면서 경영권 세습을 위해 박근혜·최순실과 (삼성이) 대가성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손실까지 입히며 합병을 추진한 것은 이러한 검은 거래의 결과였음이 밝혀졌다”고 했다.

또 경실련은 “미래전략실이 해체하고 사장단 회의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순환출자 등으로 총수일가 중심의 전근대적 소유·지배구조를 갖고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장충기 전 차장과 국가정보원 실장 및 언론과의 문자 대화 등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계획, 수단 등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행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도 “법과 원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범죄혐의의 중요성에 비춰 최소한의 양형만 선고한 다소 아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판결은 삼성그룹의 중요한 재편작업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미전실(미래전략실)이라는 법적권한과 책임이 모호한 조직에 의해 불법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법원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문제점이 있다는 점, 이재용이 무리하게 경영권을 승계하려다 불법을 저지른 것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삼성의 전문경영진들은 이재용이라는 ‘총수’의 복귀를 전제하지 말고, 총수 없는 회사로서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립해야 한다”며 “삼성뿐 아니라 모든 기업과 정치인들은 정경유착이 결국 본인 및 회사에 큰 손실로 귀결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는 횡령·배임 등과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비리경영인 이재용 등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재용 등은 재판결과로 확인된 회사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 회사는 유무형의 손실을 입힌 이들에게 퇴직금 등을 지급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도 했다.

반면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 “재판부가 70억원이 넘는 돈을 뇌물액으로 인정했는데도 정경유착의 최대 수혜자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5년을 선고한 판단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범죄의 심각성에도 낮은 형량을 내린 사법부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2심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을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하면서도 경영권 승계가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이익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며 “그렇다면 삼성물산·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삼성물산이 손해를 본 상황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참여연대는 또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죄’를 인정함에 따라 삼성전자에 이 부회장을 이사에서 해임하고 이 부회장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이 회사의 손해를 배상하지 않으면 주주를 모아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 부회장에 대한 징역 5년 선고를 “유전무죄법을 적용한 봐주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64억원 횡령, 재산 국외도피, 72억원 뇌물공여 등 재판부가 인용한 혐의를 보더라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야 한다”며 “말로는 정경유착을 질책하는 대신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형량을 낮춘 불법 판결”이라고 했다. 

또 재판부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모금이 청와대 안종범(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의해 이뤄진 것이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직접 준 포괄적 뇌물로 인정할 수 있고, 이것은 대법원 판례로도 나타나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이번 판결을 “알맹이 빠진 국민농락, 재벌 봐주기 솜방망이 판결의 번복”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종범에 불과한 최지성·장충기가 징역 4년형을 받은데 비해 국정농단의 주범인 이재용 부회장에 지나치게 낮은 형이 선고됐다”며 “이 부회장이 저지른 범죄의 경우 징역 5년은 판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형량으로 ‘이재용 봐주기’ 판결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번 판결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르·K스포츠재단 204억원 출연을 뇌물로 보지 않은 것과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뿐 아니라 롯데·SK 등 재단에 출연한 다른 재벌총수들과 뇌물혐의와도 직결돼 있어 ‘전형적인 재벌봐주기’라는 것이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했다기보다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을 두고 민주노총은 “중범죄를 저질렀으나 어쩔 수 없이 저질렀고 개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나쁜 의도와 목적이 아닌 해괴한 논리”라고 평가했다.

이날 오전 선고공판에 앞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과 함께 이 부회장 엄중처벌 집회를 열었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도 선고 후 기자회견을 열고 논평을 발표했다. 반올림은 “삼성 재벌 총수에게 처음으로 실형이 선고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국정농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해왔던 국민들의 법 감정에 비취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재판이 삼성 직업병 문제와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직업병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억울하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준 수백억원 뇌물은 (직업병) 피해자들을 치료하고 보상했어야 할 돈인데, 온 나라를 혼탁하게 한 삼성 재벌총수에게 겨우 징역 5년(선고)이라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고 했다. 

반올림은 “법원은 돈과 권력있는 사람들이 법을 존중하는 세상이 되도록 중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며 “부족한 처벌로는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