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적십자 직원 체카 론타보가 지난달 22일 태풍으로 가족을 잃은 다섯살 소년 가브리엘과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론타보가 참여하고 있는 팀은 약 일주일 전 타클로반의 쓰레기 더미에서 자고 있는 가브리엘을 발견해 데려왔다. 타클로반|AP연합뉴스


슈퍼태픙 하이옌이 필리핀을 휩쓴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필리핀에서는 인신매매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AFP통신은 11일(현지시간) 필리핀 정부에 인신매매 조사를 요청하는 국제 아동 자선단체 플랜 인터내셔널의 의견을 전했다. 플랜의 인신매매 반대 활동가인 셜리 바스테로는 태풍 이후 취업한 사마르섬 여고생 5명이 사창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여고생들은 처음엔 수도 마닐라에 있는 제과점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했다고 알려졌지만, 플랜 관계자는 학생 부모들의 증언을 빌어 “어떤 제과점이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겠는가”라며 여고생들이 인신매매로 사창가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플랜 측은 또한 태풍 피해 이후로 피해 지역의 인신 매매 위험이 늘었다고도 말했다. 바스테로는 “사마르는 원래 인신매매범들의 근거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2008년 인신매매 반대 활동을 시작 이후에는 수백명이 사창가에서 일을 그만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간 뒤 많은 아동들이 거처와 보호자를 잃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일터를 잃어버린 성인들도 인신매매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바스테로는 “필리핀 정부도 인신매매 위험이 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필리핀 정부는 플랜의 문제제기가 있던 다음날인 12일에야 대변인을 통해 아동 인신매매를 억제하기 위해 활동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에르미니오 콜로마 대변인은 “아동들과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정부는 이 사안에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태풍 피해 지역 아동들의 인신매매를 막기 위한 인신매매 대책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도 콜로마 대변인이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가 인신매매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필리핀 야당인 가브리엘라당의 루즈 일러건 의원은 “인신매매범들을 검거하거나 인신매매를 예방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도 프로그램도 보이지 않는다”고 현지 일간 마닐라타임스에 말했다. 일러건은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 직후에도 어린 소녀들이 사창가에서 쌀이나 통조림과 교환됐다는 사실에서 정부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피해지역에서 거주자들뿐아니라, 태풍을 피해 마닐라와 세부 등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여성들도 인신매매에 취약하다고 일리건은 지적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