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피해자의 딸 낙승할까 독재 조력자의 딸 역전할까

미첼 바첼레트 칠레 전 대통령(62)이 칠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예상대로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과반 득표에 실패해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칠레 중도좌파연합 ‘누에바 마요리아’(새로운 다수) 후보로 칠레 대선에 출마한 바첼레트는 지난 17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득표율 46.68%로 1위를 차지했다. 바첼레트의 라이벌로 떠올랐던 중도우파연합 ‘알리안사’(연대)의 에벨린 마테이 후보(60) 역시 예상대로 2위에 올라 두 사람은 다음달 15일 결선투표에서 최종 승부를 가른다. 

경향신문

이번 대선은 칠레를 18년 동안 다스린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수혜자 딸과 피해자 딸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바첼레트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 장군은 피노체트가 전복시킨 아옌데 정권에서 요직을 맡았다. 1973년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 정권에 협조하지 않던 바첼레트 장군은 이듬해 고문 끝에 사망했다. 반면 마테이의 아버지 페르난도 마테이 장군은 1978년부터 피노체트 정권 말까지 통치 조직인 군사위원회에 있었다. 칠레 공군 장군이던 둘의 운명은 피노체트 정권의 등장과 함께 크게 엇갈렸다. 

하지만 선거에선 피해자의 딸 바첼레트가 줄곧 우위에 있었다. 2010년 3월 대통령 퇴임 때도 지지율이 80%를 넘는 등 인기가 높았던 바첼레트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63)의 우파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까지 등에 업었다. 당선 가능성보다 과반 득표 여부에 관심이 쏠릴 정도로 바첼레트의 당선은 기정사실화됐다. 반면 마테이는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지난 8월에야 우파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다. 우파연합의 유력 후보들이 부패와 건강 문제로 후보에서 물러난 뒤였다. 

개표 결과 바첼레트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오히려 마테이가 예상보다 많은 표를 얻으며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마테이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 25.01%를 기록했다. 최근 칠레공공연구센터(CEP)가 발표한 여론조사 지지율 14%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마테이가 소속된 알리안사 측은 칠레 일간지 라테르체라에 “우리의 전략이 모든 여론조사보다 우위에 있었다”며 “후보 선정이 힘을 발휘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달 결선투표에서 두 사람의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마테이의 공약이 현 피녜라 정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보다 효율을 고집한 피녜라 정부에 대해 칠레 국민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보편적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는 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마테이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증세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인상 공약을 낸 바첼레트의 당선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이유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