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캄보디아 크메르루주 대학살 당시 지도부 2인에 종신형
ㆍ국제재판소 설립 더뎌 ‘1인자’ 폴 포트 등 처벌 전 사망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크메르루주 정권 핵심 지도자들이 전범재판소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소가 수백만명을 강제이주시키고 잔혹하게 학살한 크메르루주 정권 지도자들을 공식적으로 단죄한 것은 학살 35년 만에 처음이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7일 대학살 당시 크메르루주 부서기였던 누온 체아(88)와 민주캄푸치아(현 캄보디아) 국가주석이었던 키우 삼판(83)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종신형을 선고했다. 누온과 키우는 강제이주 반인륜 범죄 혐의, 대학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앞서 전범재판소 검찰은 지난해 10월 두 사람의 반인륜 범죄 혐의에 대해 종신형을 구형했다. 전범재판소는 유엔과 캄보디아가 2006년 수도 프놈펜에 공동 설립했으며, 종신형은 유엔이 세운 재판소가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이제야…’ 한 맺힌 생존자들의 눈물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가 크메르루주 정권 핵심 지도자들에게 첫 유죄 선고를 한 7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재판소에서 재판을 참관하던 대학살 당시 생존자들이 판결이 나온 뒤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다. 프놈펜 | AP연합뉴스



이들은 폴 포트와 함께 크메르루주를 설립한 실권자들이었다. 특히 누온은 크메르루주 내에서 폴 포트에 이은 ‘넘버 투 동무’(2인자)로 통했으며, 급진주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한 이론가였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재판 도중 “민주캄푸치아 시절 벌어진 일(대학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공식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대학살에 대한 의도적인 책임은 없었다며,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 뜻을 밝혔다.

급진 마오주의 세력 크메르루주는 1975~1979년 집권 기간에 대학살을 자행했다. 도시에 살던 시민들을 협박해 농촌으로 강제이주시켰고, 정권에 대항할 수 있다며 이들을 집단학살하기도 했다. 이 기간 중 집단학살을 당하거나 사형·질병 등으로 숨진 이들은 약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크메르루주 정권 주요 인사들은 자신들의 대학살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대규모 공동묘지와 사형 집행 장소, 피해자들의 옷가지와 유골 등 캄보디아엔 ‘킬링 필드’의 흔적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학살 피해자 펜 소엔은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크메르루주 정권기를 살면서 모든 것들을 직접 목격했다. 그 자체가 크메르루주 책임자들이 유죄라는 증거”라고 프놈펜포스트에 말했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은 더뎠다. 30년째 장기 집권 중인 훈 센 총리가 크메르루주 출신이라 단죄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훈 센 총리는 1997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범자 재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학살 책임자들을 처벌할 국제재판소 설립은 2003년에야 결정됐다. 2006년 재판소가 설립된 뒤에도 재판관들의 사퇴, 재판소 직원들의 임금체불과 파업 등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전범재판소가 들인 비용은 2억달러(약 2100억원)에 이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투올 슬렝 수용소 소장인 카잉 구엑 에아브가 고문·살인 혐의로 2010년 35년형을 언도받은 것이 재판소가 내린 유일한 유죄 판결이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러야 할 크메르루주 최고지도자 폴 포트는 1998년 숨졌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