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박여숙화랑에 전시된 패트릭 휴즈의 ‘Shape-Shifter’(2023). 윤승민 기자

 

그림이 움직인다. 인공지능(AI) 같은 최신 기술로 만든 영상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림 앞에서 서성일 때마다 그림은 좌우로 움직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림의 비밀을 알 수 있다. 그림은 평면의 캔버스가 아니라 뾰족하게 솟거나 움푹 들어간 나무판 위다. 그림 속 복도 끝은 평면이나 움푹한 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림 옆으로 다가가면 사실 돌출된 부분에 그려져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다. 반대로 정면에서 보면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건물은, 그림 속 가장 움푹 들어간 부분에 그려져 있다. 멀리 보이는 부분이 사실은 가장 가까이에, 가까이 보이는 부분이 가장 멀리 배치되면서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가 발생한다.

서울 용산구 박여숙화랑에 전시된 패트릭 휴즈의 ‘Shape-Shifter’(2023)를 가까이서 보면 돌출된 구조가 보인다. 윤승민 기자

 

서울 용산구 박여숙화랑이 지난 2일 문을 연 영국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 패트릭 휴즈(86)의 개인전은 ‘리버스펙티브’(Reverspective)라 불리는 그림으로 보는 이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달 초 열린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아트페어) 키아프에서도 이런 독특한 휴즈의 리버스펙티브 작품들은 보는 이들의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부스에 내걸린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이따금 보는 이들의 탄성이 들릴 정도였다. 휴즈의 개인전을 15년 만에 연 박여숙화랑의 박여숙 대표는 “젊은이들부터 어린아이들까지도 휴즈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좋아했다. 자녀가 부모에게 그림을 사달라고 졸라 실제 판매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입체적인 공간에 그림을 그려 보는 이들의 눈을 홀리는 휴즈는 리버스펙티브를 1964년부터 제작해 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200회 넘게 개최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브리튼과 대영도서관, 미국 보스턴미술관,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과 제주 본태박물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다른 작가가 쉽사리 시도하지 못한 독특한 작업을 50년 넘게 선보인 휴즈에게 런던대는 2014년 지각 심리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명예 과학박사 학위를 수여 했다.

서울 용산구 박여숙화랑에 전시된 패트릭 휴즈의 ‘Canaletto’(2024). 박여숙화랑 제공

 

런던에서 작업하는 그는 80대 중반의 고령으로 장거리 비행이 어려운 몸이 됐지만 최근까지도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 출품작 23점 중 대다수가 올해를 포함해 2020년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굴곡진 나무판을 직접 제작한 뒤 그 위에 건물이나 거리를 그린다. 때로는 건물 사진을 나무판에 맞게 편집해 인쇄하면서 실제 거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2023년 작 ‘Shape-Shifter’ 또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리버스펙티브 작품인데, 그 작품의 배경으로는 그가 그려왔던 다른 리버스펙티브 작품들이 그려져 있다.

휴즈는 그림을 보며 신기함이나 어지럼증을 느낄 이들에게 ‘어떻게 세계를 보고, 보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휴즈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관객에게 ‘모순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며 “눈이 한쪽을 향할 때 몸이 반대쪽을 향하면 우리는 그림이 실제로 움직인다고 믿게 된다. 평생 눈과 발은 완벽히 동기화됐기에, 그 불일치가 발생하면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