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그랩’(Grab)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동남아시아판 우버’로 불리는 차량 공유 서비스다. 그랩은 우버와 비슷한 원리로 움직인다. 사용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근처에 있는 승용차 및 오토바이 기사와 연결시켜준다. 이들은 그랩에 등록된 기사들이지만 택시기사 같은 전문 운송사업자들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에서 널리 쓰인다. 대회 공식 최고 후원사(프레스티지 파트너)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 그랩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버 동남아지사를 지난 3월 인수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지난해 11월 기준 동남아 전역에 등록된 기사만 200만명, 하루 이용량이 350만건이다.
자카르타에서는 숙소와 경기장 주변에 택시가 적잖이 다닌다. 5~10분 거리를 택시로 이동해도 한국돈 1000원이 조금 넘게 들기에 택시를 주로 탄다. 하지만 택시 잡기 힘든 팔렘방에서는 그랩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우버를 써본 적은 없었는데, 자연스레 그랩 유저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6일 팔렘방, 기사가 많은 건지, 아시안게임 경기장에 가려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목적지를 입력하자마자 기사가 바로 연결됐다. 기사의 얼굴과 이름, 차량번호가 함께 뜬다. 앱을 통해 기사와 짧은 영어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꽤 친절한 기사와 깨끗한 차를 타고 경기장까지 무사히 닿았다.
기사를 부르기 전부터 요금이 정해져있다는 게 편했다.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짧은 길을 돌아가며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지만 그랩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리 등록한 카드에서 요금이 자동 결제된다는 점도 택시보다 나았다. 택시에서는 요금의 루피아 10의자리까지 찍히지만, 기사들은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게 예사였다. 잔돈을 미리 준비할 걱정도 덜었다. 전날 자카르타 공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그랩 기사는 고속도로 이용료를 따로 받겠다고 했다. 잔돈이 없었지만, 기사가 앱을 통해 추가 요금을 입력하는 것으로 해결됐다.
물론 알 수 없는 점들도 있었다. 요금이 택시보다 싼 건 분명해 보였지만, 어떻게 정해지는 줄은 알 수 없었다. 일요일이던 지난 26일, 숙소에서 경기장에 갈 때와, 경기장에서 숙소로 돌아갈 때 요금이 달랐다. 그리고 전문 택시기사들이 아니다보니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앱에는 내비게이션이 포함돼 있지만, 기사들이 내비게이션을 보는 게 익숙지 않아 보였다. ‘별 5개’를 받은 어떤 기사는 앱에 표시된 것과 다른 번호의 차를 끌고 나왔다. ‘별 5개’ 기사의 차는 대체로 깨끗한 데 반해 허름한 차여서 당황했다. 기사의 친절함에 마음이 금방 누그러지긴 했지만, 내내 에어컨 바람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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