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 날

애니타 해닉 지음 | 신소희 옮김

수오서재 | 348쪽 | 2만원

죽음을 피하려는 건 생명체의 본능이다. 5년간 존엄사를 현장에서 관찰해온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모두가 죽음을 회피하려 할 경우 그 불가피성을 직면하기가 지독하게 고통스러워진다”고 했다. 인생의 선택지가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면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존엄사, 정확히는 조력 사망을 시도하거나 고민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된다. 미국에서는 오리건주 등 11개 주에서 조력 사망을 합법화했다. 미국의 조력 사망은 보통 6개월 이하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만 신청할 수 있으며, 본인이 직접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삼켜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이 때문에 루게릭병이나 치매 등 만성 퇴행성 질환 환자는 조력 사망을 할 수 없다. 조력 사망 자격을 받길 기다리다 소화기관 등이 망가져 약물을 삼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다.

책은 조력 사망의 필요성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조력 사망이 “난치병 말기 환자와 비슷한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삶을 암묵적으로 평가 절하한다”는 관점도 소개한다. 호스피스를 이용하라는 주장도 있지만 저자는 “(둘은) 상충하는 선택지가 아니”라며 조력 사망 시행 후 호스피스 인력이 늘어난 오리건주의 상황을 전했다.

저자는 다만 “일찍부터 삶의 마지막을 두고 대화를 시작하면 죽음에 관한 사회적 지식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환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들여다보게 되고, 마음이 편해져 실제 조력 사망 절차를 밟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리건보건대 정신과 전문의 린다 간지니에 따르면, 조력 사망을 신청한 오리건 주민의 유족은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유족보다 더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조력 사망을 신청한 유족 중 90% 이상이 작별할 기회가 주어져 만족한다고 답했다.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가족들에게 조력 사망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