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한다는 착각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 정신재 옮김
다산초당 | 424쪽 | 2만3000원

1886년 7월 네덜란드에서 새로 발효된 형법엔 ‘합당한 목적 없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고문을 가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운하 양쪽에 건 밧줄 한가운데 뱀장어를 올려놓고 ‘뱀장어 잡아당기기 놀이’를 즐겼다. 경찰이 형법에 따라 이를 막으려다 밧줄 한쪽을 끊었고, 그 밧줄 끝에 다섯 살 소녀가 맞았다. 이는 노동자 인권 신장과 보통선거권을 요구해온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로 번져 26명이 사망하게 되는데, 후일 ‘암스테르담 장어 폭동’으로 기록된다.
네덜란드 출신인 저자는 당시 형법에 대해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동물권을 인정”했다면서도 “동물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뱀장어의 눈높이에서 이 시위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며 당시의 형법이 동물들이 잔인하게 죽는 모습을 사람들이 덜 보게 하려는 것으로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도 했다.
책은 일곱 종의 동물에 초점을 맞춘다. 16세기 ‘빙하의 콜럼버스’로 불린 네덜란드 탐험가 빌럼 바렌츠가 남긴 극지방 항해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다. 이들은 살아남았지만 인간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책은 바렌츠의 원정대가 일곱 종의 동물을 마주친 순간뿐 아니라, 인간 중심 사고 탓에 사라질 뻔하거나 오해를 받았던 근현대의 상황들을 소개한다.
16세기 시베리아 해안에서 발견되던 왕게는 2022년 영국해에 당도해 가리비 같은 영국 토종 생물을 위협하는 외래종이 됐다. 그러나 결국 ‘손질이 쉽고 맛이 좋아’서 인간에게 쉽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된다. 책은 왕게의 이동이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캄차카반도에서 북극의 바렌츠해로 옮기려던 소련의 실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생태계 위협’ 같은 개념도 결국 인간 중심의 사고가 아닌지 되묻는다. 저자는 “인간 역시 살던 터전을 벗어나는 순간 야생 동물이 된다”며 “인간들이 말 없는 물고기보다 많은 권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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