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가상통화’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가상통화 주요 투자자인 2030세대 표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가상통화 자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등에 대한 의견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대책을 당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지 등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당 차원의 대응 기구 출범도 거론됐지만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27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가상통화 제도 개선은 정책위원회에서 논의하지만 별도 기구는 출범하지 않기로 했다”며 선을 그었다. 가상통화를 둘러싸고 정부와 여당에서 나오는 주요 쟁점들을 정리했다.
■ 제도권 자산으로 인정해야 하나
자산 인정 여부 당내 이견
입법·규제 놓고 ‘갑론을박’
투자자 눈치 과세 유예론에
일부는 “과세 후퇴 안 된다”
홍남기 “내년 기타소득 과세”
현재 가상통화를 둘러싼 정부의 태도는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 가상통화 관련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가상통화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그간 ‘가상통화의 제도권 진입을 인정하는 순간 시장이 과열되고 투기도 심해질 수 있다’는 취지에서 관련 규제를 만드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러나 “가상통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보고 있다. 노웅래 의원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가상통화의 인정 여부를 따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인정하지 않기에는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특히 부동산·주식에 들어오지 못한 청년들이 몰려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상통화 투기 과열이 시작된 2017년말 이후 가상통화 거래액은 계속 늘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4대 가상통화 거래소의 월간 거래금액은 지난해 9월 25조원에서 올해 3월 730조원으로 급증했다. 정부가 가상통화를 인정하면서 투자자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가상통화의 제도권 편입 주장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재선 의원은 “가상통화가 미래에도 금처럼 모두에게 가치가 있는 자산이 될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국회 요구로 사모펀드 투자자·운용사의 진입장벽을 낮췄다가 ‘라임사태’ 같은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진 것처럼 가상통화를 서둘러 인정했다가 투기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 규제를 위한 국회 역할은
현재 가상통화와 관련된 규제는 가상통화를 취급하는 거래소의 요건을 정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뿐이다. 특금법은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규제를 도입,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개설하고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등록해야만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나마 이 규정도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가상통화의 정의를 규정하는 법안은 아직 없다. 내년부터 가상통화에 세금이 매겨지긴 하지만 가상통화 투자 차익은 금융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가상통화 규제는 국가별로 제각각이지만 미국·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가상통화 상장 심사를 도입하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2017년에도 가상통화에 거래소 인허가제 도입·불공정 거래 처벌 조항을 담은 전자정보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며 “당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의원들이 의견을 내지만 당 차원에서는 신중한 기류가 더 강하다. 급등락이 심한 시장에 2030세대가 뛰어들면서 정치권은 어떻게든 움직여야 하지만, 21대 국회 들어 가상통화 규제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내 가상자산 총규모가 20조원이 넘고 투자자도 400만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그저 방치할 수는 없다”면서도 “가상자산이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유의해서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과세, 왜 미루자고 하나
홍남기 국무총리 권한대행(부총리)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1월1일부터 (가상자산 소득이) 기타소득으로 과세된다”며 “조세 형평상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가상통화 과세를 유예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향자 의원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상통화는 자산이므로 소득에 대한 과세는 필요하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다른 의원들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은 맞지만, 과세 전에 갖춰져야 할 제도가 많다’는 생각이 강하다. 과세 유예는 투자자들의 반발을 달랠 수 있는 대책이자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상통화 관련 제도 논의 시간을 벌자는 의미도 있다.
한편에선 여당이 투자자들이 반발할 때마다 과세를 후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정부가 2023년부터 주식 양도소득세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기본공제액을 2000만원으로 정하자 투자자들이 반발했고 민주당이 이를 올리자고 주장한 끝에 5000만원으로 상향된 적이 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증세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과세 후퇴가 계속되면 여당이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이런 식이면 모든 반발 여론이 나올 때마다 과세를 미루거나 세금을 줄이자고 해야 한다”며 “너무 성급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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