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깊이 사과” “신속·공정 수사” 요청
의혹 중심 송영길 전 대표에게 “조기 귀국” 촉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2021년 전당대회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검찰 수사로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 5일 만이다. 이 대표는 당 차원 진상조사 계획을 접는 대신 수사기관에 공정한 수사를 요청했다. 당시 송영길 후보 캠프 중심으로 돈 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인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도 요청했다. 돈 봉투가 오간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만큼 더이상 외면하거나 검찰의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으로 피해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고 신속한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속개하기 전 “우리 당의 지난 전당대회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의혹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는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 대표는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을 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한 것이다. 그는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 할 것이고,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서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사과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이 지난 12일 윤관석·이성만 민주당 의원 등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관련자들을 압수수색한지 5일만이다. 민주당은 압수수색 다음날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관련 입장을 낸 바 있지만, 당시에는 “국면전환용 기획수사가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혹을 피할 수 없다”며 검찰 수사 시기 및 의도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압수수색 대상이 된 의원들이 목소리가 담긴 녹취가 공개되고 현역 의원 10여명이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자 민주당은 입장을 내지 않고 자체적인 진상조사 등의 대응책을 논의했다.
민주당은 전날 밤늦은 시간까지 비공개로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한 끝에 이 대표의 사과와 자체조사 대신 검찰의 신속한 수사촉구를 결정했다.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었으나 어떤 방법으로 돌파할지를 두고 논의가 길어져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고 한다.
논의 결과 의혹 초기에 거론됐던 당 자체 진상조사 대신에는 수사기관의 수사를 택하기로 했다. 당에서는 의혹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 외에 강제력을 동원해 진상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 그 때문에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하고도 뚜렷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오히려 민주당이 ‘셀프 조사’로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커질 수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된 조치다.
이 대표는 돈봉투 배포 의혹에 대해 사과하면서 현재 수사 중인 검찰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했을 뿐 검찰 수사 의도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검찰이 민주당을 정치적으로 탄압한다고 주장할 때마다 씌워지는 ‘방탄’ 프레임과 정쟁화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해당 사건이 당 전체에 미칠 악영향이 그만큼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돈 봉투를 받았다는 현직 의원 다수가 특정된 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이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 전체에 부패 집단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어 당 차원 대응을 미룰 수만은 없었다. 이 대표 수사에서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은 것과 달리, 전당대회 수사에서는 현역 의원들 다수가 금품을 주고받은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이 공개된 상황도 민주당이 섣불리 정치 탄압을 주장할 수 없게 한 요인이다.
민주당은 사과와 정면 대응까지 5일이 소요됐다는 비판은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중 기자들과 만나 사과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사건의 유일한 근거로 보이는 녹취록을 녹음했다는 사람이 구속된 상태라 접근이 불가능해서, 당 입장에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다”며 “(의혹) 내용을 비공식적으로나마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이후 검찰 수사의 속도나 방향, 결과에 따라 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당이 수사 결과에 따라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수사가 길어지면 민주당의 부패 이미지가 짙어지고 또 총선을 앞두고 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놓고 당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다시 제출되는 등 이 대표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 당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의원은 통화에서 “늦게나마 사과를 한 것은 다행이지만 당내 기구가 엄정하게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당의 자정 능력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며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추가로 제출될 때에도 당이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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