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50석 늘리는 선거제 개편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공식 제안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세비 동결을 전제로 의원 정수를 350석으로 늘려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의원정수를 지금처럼 300석으로 유지할 경우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는 안을 차선책으로 제시했다.
국회의장실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는 전날 정개특위에 선거제도개편 자문의견을 통해 세 가지 선거제 개편안을 제시했다.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국회의원 정수를 350명으로 늘리는 방안 두 가지와 현행 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되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세 가지 안 모두 비례 의석 수 증가를 전제로 한다.
첫 번째 안은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시키는 방안이다.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는 현행 47석에서 97석으로 50석 늘린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은 전국 득표율대로 배분하는 방식과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 정당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 두 가지 방식을 제안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출마할 수 있는 중복입후보제 허용도 제안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열세 지역 후보자가 비례대표로 구제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두 번째 안은 ‘소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지역구 선거 방식과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지금대로 하되 전국 6개 권역별 득표율을 기반으로 비례 의석을 나누는 안이다. 이 안도 비례 의석수를 97석으로 늘리도록 했다. 대신 현행 비례대표 선출 방식의 부작용인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과시키도록 했다. 지역구 후보자를 일정 수준 이상 공천한 정당에 비례대표 추천을 의무로 두는 내용이다.
세 번째 안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개방형 비례대표제’다. 지역구에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에서 권역별 개방형 명부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현행 국회의원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을 일부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취지다.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는 대도시 지역 선거구를 통폐합해 지역구당 3~10인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산어촌에는 지금처럼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안이다.
이번 자문위 안은 국회의장이 비례 의석수 확대를 공식 선거개혁 의제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김 의장은 국민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자는 선거제 개혁의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 의석수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특히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에는 현행 비례 의석수 47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고려도 있다. 수도권이 인구 절반을 차지하기에 47석으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할당되는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회의 합의와 국민 여론 지지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과제다. 의원 정수를 동결하고 지역구 의석을 줄이면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 그렇다고 지역구 의석을 줄이지 않기 위해 의원정수를 늘리기에는 아직 국민 공감대가 크지 않다.
정개특위가 지난 14일 공개한 ‘정치개혁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안에 대해 비동의가 57.7%로 동의(29.1%)보다 훨씬 많았다. 자문위는 반대 여론을 고려해 의원 정수를 늘려도 인건비 축소 등 세비 동결을 전제로 하도록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또 국민이 비례대표 후보를 직접 뽑는 개방형 명부제를 도입하면 비례 의석 증원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개특위는 김 의장이 제안한 선거구제 개편안 세 가지를 포함해 국회에 제출된 선거법 개정안을 두루 검토한 뒤 두 개 안으로 압축해 3월까지 전원위원회에 제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개특위는 지난 5일 워크숍을 통해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적 비례대표제’ 등 4가지 개편안을 마련했다.
정개특위는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시한인 4월10일 이전에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의미있는 논의 결과를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문제 등으로 인해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양당 문제가 정리된 후 두 달여 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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