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화장된 주검, 다음달 4일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 묘지에 안장
시에라마에스트라 산악지대에서 혁명 투쟁을 시작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다시 시에라마에스트라로 돌아간다. 25일(현지시간) 피델이 세상을 떠나자 쿠바 정부는 아흐레 동안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공산당 중앙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주검은 26일 화장됐으며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 뼛가루를 담은 항아리가 안치돼 조문객들을 맞게 된다.
29일에는 아바나 혁명광장에 추모소가 차려지고, 대규모 추모집회가 열린다. 항아리를 실은 행렬이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1950년대 혁명군의 행로를 거슬러 내려가, 아바나에서 시에라마에스트라로 향한다. 3일 피델이 독재정권에 맞선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을 일으킨 동부 산티아고데쿠바에 도착하면 안토니오 마세오 광장에서 다시 한 차례 대규모 추모식이 열린다. 다음날인 4일 오전 피델의 유해는 호세 마르티가 묻힌 산타이피헤니아 묘지에 묻힌다.
피델은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고, 사회주의 체제를 실험했고,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좌파의 맏형 노릇을 했다. 혁명투사로 칭송받고 독재자로 지탄받은 그의 인생은 논쟁적이었고, 세계는 그의 적과 동지로 갈라졌다.
피델은 1926년 8월, 동부 오리엔테주 비란의 스페인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들어가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글을 읽으며 사회주의자가 됐다.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쿠데타로 친미 군사독재정권이 세워진 1952년 그는 ‘7월26일 운동’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
1955년 체포를 피해 멕시코에 간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의사를 만난다. 피델이 “나보다 더 혁명적”이라고 평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두 혁명가는 1956년 11월 그란마호에 몸을 싣고 쿠바에 들어온다. 3년 뒤인 1959년 1월, 피델·라울 형제와 체 게바라 등은 마침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피델은 농지개혁과 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혁명조치들을 실행했다. 농민들은 환호했다. 무상교육·무상의료 시스템은 노동자들과 도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피델의 사회복지 개혁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집권 첫 30개월간 만든 학급 수는 그 이전 쿠바가 30년간 설치한 학급 수보다 많았다.
문맹은 사라졌고 의료 시스템은 세계의 칭송을 받았다. 쿠바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사를 해외에 파견하는 나라이며,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4.7명으로 미국보다도 낮다.
문제는 경제다. 미국의 봉쇄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1962년 시작된 미국의 제재로 경제가 무너지자 불만을 품은 쿠바인들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혁명 후 지금까지 쿠바를 떠난 사람은 100만명이 넘는다. 냉전이 끝나 소련이 무너진 뒤 쿠바 경제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카리브해 작은 섬의 지도자가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대부’가 된 데에는 피델의 카리스마와 열정적인 연대가 큰 몫을 했다. 그는 혁명조직의 훈련이나 육성을 지원하며 제3세계 국가들을 이끌었다. 소련이 무너진 후로는 중남미 사회주의의 ‘교장 선생님’이 되어 베네수엘라 등 남미 사회주의 정권과 연대했다. 하지만 독재정권을 전복시킨 피델은 그 자신이 장기집권자가 됐고, 표현과 집회·결사, 언론의 자유는 제한됐다. 쿠바는 “형식적인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정치활동에 동참하는 참여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공산당 지지도나 당 활동 참여는 줄고 있다. 피델이 떠난 지금, 그가 남긴 모든 유산은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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