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PO) 4차전 키움-LG전 9회말 키움 마무리 투수 오주원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10-5 승리를 지킨 뒤 포수 이지영과 주먹을 부딛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안 키움의 가을야구 화두는 ‘박동원의 포수 출전여부’였다. 정규시즌 막바지 오른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 부상을 당한 박동원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 차례 포수로 선발출전했으나 무릎 통증이 도져 경기 도중 교체됐다. 키움은 박동원을 플레이오프 때 선발 포수로 쓰지 않겠다고 했다.

정규시즌 박동원과 포수 마스크를 나눠 쓴 이지영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지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며 우려를 기대로 바꿔놓고 있다. 준플레이오프 4경기에 모두 출전해 12타수 4안타, 타율 0.333을 기록했다. 키움이 불펜투수 가용자원을 매 경기 최대한 소진하는 터라 거의 엔트리에 포함된 거의 모든 투수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키움이 9명 이상 투수를 쏟아부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던 데도 이지영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준PO 4차전에서는 선발포수 주효상이 흔들리며 2회 갑작스레 투입됐음에도 추가 실점을 최소화하고 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지난 14일 SK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이지영의 진가는 더 잘 드러났다. 선발 제이크 브리검부터 마지막 투수 오주원에 이르기까지 11이닝 동안 투수 9명의 공을 받으면서 무실점 계투를 이끌었다. 공격과 주루에서도 기여도가 컸다. 4회와 6회, 두번의 2사 1루 상황에서 안타와 볼넷을 얻어 선행주자를 득점권으로 보냈다. 8회에는 2사 후 볼넷으로 출루해 2루에 닿은 뒤, SK 포수 이재원의 패스트볼 때 3루로 재빨리 내달려 비디오 판독 끝에 세이프됐다. 포수임에도 빠른 발을 자랑하는 이지영의 재빠른 판단이 빛난 장면이었다.

시즌 전, 박동원의 복귀 시점이 불투명한 가운데서 이지영을 영입한 키움은 결과적으로 박동원이 조귀 복귀하면서 ‘이지영 효과’를 봤다. 두 주전급 포수가 번갈아 선발 마스크를 쓰고 체력부담을 덜며 공·수에서 활약했고, 키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이지영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이지영이 선수들 중 가장 많은 한국시리즈 경험을 보유한 덕이다.

키움은 넥센 시절인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이후 거의 매년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한국시리즈는 2014년 딱 한 번 경험했다. 삼성의 왕조시절에 프로 데뷔한 이지영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든 키움 선수 중 가장 많은 19번의 한국시리즈 경기를 치렀다. 동료 선수들 역시 포스트시즌 경험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승을 앞둔 긴장감 넘치는 무대에 올라본 선수가 많지는 않다. 한국시리즈 경험은 이지영이 새로운 팀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을야구를 치를 수 있는 배경이 됐다.

14일 1차전을 마친 뒤 만난 이지영은 “삼성 시절 좋은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때 배운 노하우들을 잘 써먹고 있다”며 “어차피 우리 팀 투수들도 가을야구 경험들도 있고, 1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리드에 어려움은 없고 투수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홀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될 상황이 많아질 수 있지만, 이지영은 “플레이오프가 길어야 5경기다. 체력문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긴 그렇고, 잘 먹고 잘 쉬면 경기 뛰는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각오를 다졌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