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장수’.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10일 최종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57)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의 정치여정 주무대는 여의도 국회가 아닌 경기도와 성남시였다. 10대 시절을 공장에서 보내며 산업재해를 당하고 중·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쳤던 삶의 궤적도 변방이었다. 하지만 장수의 칼날은 변방에서도 예리했고, 때로는 영리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이다 발언을 거침없이 터뜨리며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처음 확산되던 지난해 2~3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시설을 강제 봉쇄하고 전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결단으로 지역 주민들의 뇌리에 ‘일 잘하는 행정가’의 면모를 각인시켰다. 특별한 정치적 후광이나 계파가 없던 그가 집권여당 대선 후보로 발돋움한 비결이다.
이 지사는 2017년 19대 대선 출마를 앞두고 공저한 책 <이재명의 굽은 팔>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두 사람에게는 한낱 대통령 지위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직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간난고초를 뚫고 집권여당 대선 후보로까지 오른 그의 의지가 ‘대통령이라는 큰 권한’을 향한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소년공, 맞기 싫어 딴 학위
이 지사는 출생신고상 1964년생으로 돼 있다. 실제로는 1년 빠른 1963년 12월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 마을에서 5남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5㎞ 산골길을 걸어 다녔던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가 먼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으로 어머니·형제들과 이주했다. 아버지는 상대원시장 청소부였다. 가족들은 성남으로 옮긴 직후에도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10번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그 때문에 집착과 승부욕이 강하다”며 “그것이 정치인 이재명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성남에서 10대 시절 5년6개월간 여섯 곳의 공장을 다녔다. 그의 유년시절을 상징하는 굽은 왼팔은 다섯번째 공장인 대양실업에서 프레스에 손목 관절을 다친 뒤 손목뼈 하나가 자라지 않게 되면서 얻은 장애다. 이 지사는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가 반기지 않았던 공부를 공장일과 병행했다. 고입과 대입 모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리고 졸지 않으려 책상 위에 압정을 뿌려가며 학력고사를 준비한 끝에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5·18과 노무현, 인권변호사
이 지사는 최근 사회적 이슈인 언론개혁과 관련해 자신도 “가짜뉴스의 피해자”라고 했다. 공장에 다니던 1980년에는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언론 보도대로 ‘폭도들의 소행’이라고 여겼지만, 캠퍼스에서 학우들이 뿌리는 유인물을 보며 진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주겠다는 학교(중앙대)에서 커트라인 점수가 가장 높다는 이유만으로 법학도의 길을 택했던 이 지사는 어려웠던 가정형편 탓에 학생운동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부채감을 안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1986년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18기가 된 이 후보는 한 때 판·검사의 길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연수생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도 세 끼 굶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 강연을 듣고 인권변호사로 인생의 진로를 굳혔다고 한다. 연수생 2년차에 <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습했던 경험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는 계기가 됐다.
■성남에서 시작한 시민운동…정치인을 꿈꾸다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고, 1994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연대) 창립에 참여하며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한다. 당시 대표적인 활동은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제기,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 제기, 그리고 그해부터 시작된 성남 시립병원 설치운동이었다. 이 지사는 10만명 서명운동을 벌인 뒤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으나, 성남시의회는 2004년 3월25일 개회 47초만에 부결시켰다. 이는 이 지사가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하기로 한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지사는 파크뷰 사건을 취재하던 KBS 프로듀서가 검사를 사칭해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을 취재하게 도왔다는 혐의로 2003년 7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성남시의료원 조례 발의날 의회를 진입했다가 받은 벌금 500만원, 2014년 7월 혈중알코올 농도 0.158%로 음주운전을 하다 받은 벌금 150만원은 이 지사의 선거출마 때마다 따라붙는 전과로 남았다. 이 지사 측근인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최근 SNS에 “흠이 아니라 기득권과 싸우다 생긴 상처”라고 했다.
■성남시장 재선…변방에서 중앙으로
이 지사는 2006년 지방선거에 성남시장, 2008년 총선에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으로 각각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지지세갸 약한 선거구였지만 선전했다는 평을 들었고, 결국 재도전해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다.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임 시정에서 늘어난 빚을 갚기 위해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3년 만에 부채 4572억원을 갚았다. 정치 입문의 계기였던 성남시립의료원도 2013년 착공한다. 이 지사는 민주당 계열 정당에 호의적이지 않던 ‘부촌’ 분당구에서도 보수정당 후보에게 앞서며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다. 성남시장 2기 때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청년배당, 중학생 대상 무상교복 지원을 현실화하며 주목을 받았다.
특유의 적극적인 SNS 사용은 성남시장 때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이 지사는 2017년 출판된 자신의 에세이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수많은 채널을 통해 각계각층의 사람과 친구를 맺고 정보 공유를 한다. 이 과정에서 집단지성의 놀라운 힘을 피부로 느낀다”고 적었다. 이 지사의 SNS 활용을 두고 측근들은 그의 정무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다. 이 지사 캠프 소속 한 측근은 “이 지사는 바둑실력이 수준급이다. 판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알고 포석을 두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대선 경선… ‘반문’ 꼬리표에 지사직 상실 위기
대중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 이 지사는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성남을 비롯한 경기 6개 도시의 세입 5000억원을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하기로 한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대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1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인다. 그가 다시 광화문에서 주목을 받았을 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그해 10월29일에 촛불 집회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 지사는 대선 후보군으로 떠올랐고 2017년 민주당 19대 대선 경선에 참여해 문재인·안희정 후보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당시 민주당의 ‘왼쪽 날개’를 자청하며 문재인 후보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으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이 때문에 ‘반문(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체급을 올려 경기지사에 도전한다. 친문 핵심이라는 전해철 후보(현 행정안전부 장관)와의 경선과 그 이후 본선을 거치며 ‘형수 욕설 논란’과 ‘여배우 스캔들’로 곤혹을 치렀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 강성 친문도 이 지사를 공격했다. 지사 당선 후 선거 토론 중 “셋째형 정신병원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과 “대장동 개발사업 후 공공이익을 환수했다”고 설명한 일 등이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2심에서 일부 유죄 판결이 내려졌으나,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지사직 상실 위기를 극복했다.
■대선 후보 발돋움, 새로운 도전에 직면
지난해 이 지사의 지지도가 급격히 오른 데는 선거법 무죄 판결 외에도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의 빠른 판단과 실행력이 도움이 됐다. 이 지사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도민들에게 일괄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8월 정부의 소득 하위 88%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에 반하는 ‘전 도민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밝히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도민들의 호응을 얻고 자신의 주요 공약인 기본소득에 대한 인지도까지 끌어올렸다.
신천지 시설 직접 방문 및 폐쇄, 경기도 계곡 불법 영업 정비 사업, 청년배당 지급 등도 이 지사의 ‘행정 능력가’라는 이미지를 높이는 요인이었다. 이 지사는 90%대의 높은 공약이행률, 이전 경기지사가 갖지 못했던 ‘전국 광역지자체 만족도 1위’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올랐다. 19대 대선 경선 때는 ‘한국의 버니 샌더스’에 비견될 정도로 거침없는 발언을 앞세웠다면 20대 대선 경선 때는 성장이란 구호와 함께 실행력을 앞세웠다.
지자체장으로의 성과가 강점이지만, 성남시와 경기도를 거치며 얽혔던 인연들과 일부 사업은 대선 정국에서 그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인 후광이나 계파 없이 중앙 정치 무대에 다다른 ‘변방 장수’ 이 지사에게 대선 국면에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기로 성장해 왔던 이 지사가 당과 여의도 정치와 어떻게 융합해 위기를 극복하느냐가 대통령으로 가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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